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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갈라디아서 6장 17절 예수의 흔적을 가진 나

by 주님과 함께하는 삶 2024.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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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17절 예수의 흔적을 가진 나

(2016.9.25. 메디윌병원)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흔적이 남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자화상이지요.

그 흔적들을 통해 그 사람의 진솔한 모습을 짐작케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남긴 흔적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존경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비난과 모욕을 받기도 합니다.

리듬체조 국가대표 손연재 선수의 발이라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발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얼굴은 예쁘장한데 발은 울퉁불퉁 튀어나온 아주 못생긴 발을 볼수 있습니다.

대부분 그런 못생긴 발은 감추고, 그런 발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못생긴 손연재 선수의 발을 보고 엄청난 칭찬과 찬사를 보냅니다.

그건 그의 발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발은 굳은 살로 이상하게 변형된 발이지만, 오히려 그녀가 이룬 성과는 보이지 않는 발

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기에 상처 많은 발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온통 몸에 문신자국으로 얼룩진 조폭들은 자기의 문신이 더 무섭고 멋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자기 몸에도 칼자국이 있고, 꿰맨 자국이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신이나 상처를 보고 칭찬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 혐오할 뿐이지요.

그렇습니다.

 

상처라고 다 같은 상처가 아니고, 흔적이라고 다 같은 흔적이 아닙니다.

누구는 감추고 싶은 상처를 가졌고, 부끄러운 상처를 가졌습니다.

비난과 모욕을 당하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는 과연 오늘을 살고 나면 어떤 흔적이 남게 될까요?

우리는 과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까요?

후회와 부끄러움이 없는 발자취를 남기게 될까요?

나는 관심이 없어 잘 모르겠으니 상관없다고 말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은 몰라도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알고, 결정적으로 내 삶의 흔적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끄러운 인생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자랑스러운 인생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결정도 내릴 수 있고, 그래서 정말 잘못을 저지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에 따라 실수와 잘못도 전혀 다른 흔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자신을 구제불능이라 자학하지도, 정죄하지도 말고 바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선한 성품으로 살고자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 변할 수 있고, 바뀔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그렇게 변화된 삶을 산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헬라파 유대인으로, 다소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유대의 가말리엘에서 율법을 공부해

율법자의 자격을 갖춘 엘리트입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도 대단한 열심을 가졌습니다.

율법에 어긋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반하는 어떤 것에도 절대 타협하지 않았고,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의 믿음과 신념으로 볼 때 예수님은 분명 가짜 메시아였습니다.

짝퉁 메시야였지요.

그에 눈에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무리들 모두가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배교한 죄인들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이는 것도 너무 당연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때까지 바울의 흔적은 유대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대단한 열심과 열정과 충심을 가진 율법 선생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흉포자요. 포악자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완전히 변했습니다.

바로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러 가던 중에 하늘에서 찬란한 빛 가운데 들리는 주

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이 진정한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은 분명 흉악하고 포악한 흔적이 지닌 자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예수를 위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예수를 전하는데 생명도 아끼지 않는 예수의 흔

적을 지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닙니까?

 

예수님을 만나면 바울처럼 새로운 흔적을 지닌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예수의 흔적이 무엇인가요?

 

바울이 말하는 흔적은 헬라어로스티그마,‘바늘에 찔려서 만들어진 육체의 상처,

노예의 이마나 손에 찍은 낙인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그 소유주가 누구라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게 찍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스티그마라는 말을 자기에게 서슴없이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종이나 노예 또는 짐승에게나 쓰는 표현인데도 이 말을 자기에게 거침없이 당당하

게 적용시킵니다.

바울은 자신은 오직 예수의 소유요, 예수님은 바울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는 예수님의 이마와 손과 발, 그리고 가슴에 난 못자국과 창자국이 바울에게 있었다

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종이 이렇게 자신 있게 자기가 종이라고 밝힐까요?

그런데 바울은 아주 적극적으로 자신이 예수의 종이며, 예수의 노예라고 말합니다.

자기는 예수님으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오직 예수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예수의 종이라

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고백합니다.

 

14에 따르면 바울 쪽에서 볼 때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바울이 죽었습니다.

세상은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세상 쪽에서 보면 바울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의 흔적은 세상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들 역시 이런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런 낙인이 찍혀야 합니다.

저 사람은 예수 믿는데 손해를 보더라도 절대 거짓말 하지 않을 거야!”

저 사람은 이번에도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게 뻔해!”

저 사람은 절대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아

저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이면 어김없이 예배드리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이번에도 남을 돕는데 늘 앞장서며 희생하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늘 정직한 사람이야!” 이런 낙인이 찍혀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런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렵습니까?

어떻게 세상을 그같이 바보처럼 살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요.

목사님이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아니냐?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세상을 살 수 없지!

맞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세상을 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만 살고 끝낼 사람들이 아니기에 세상사는 방식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경계해야 할 말은적당히입니다.

우리가 믿는 모든 신념과 방식 앞에 이적당히라는 말만 넣으면 의미가 너무 달라집니다.

주일성수도 적당히, 예배도 적당히, 찬송도 적당히, 헌금도 적당히, 기도도 적당히, 봉사도 적당히....다 이런 식입니다.

그럼 천국은....천국도 적당히 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방식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천국방식은 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당당하게 외쳤던 것입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예수의 노예이며, 예수의 소유라고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고백합니다.

 

적당히 대충 산다면 우리가 남길 수 있는 흔적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만나기 전 바울처럼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면서 남을 짓밟고, 핍박하고, 감옥에 가

두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나쁜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그것이 바울의 자랑이었고, 자신을 높이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을 만나고, 예수 십자가를 통과하고 예수 부활을 확신한 후에는 전혀 달

라졌습니다.

그는 자기를 높이고,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삶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예수를 위해 고난과 고통을 당해도 전혀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바로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후에도 여전히 십자가의 상처를 그대로 가진 주님을 만났습니다.

못자국난 손과 발, 옆구리의 칼자국, 가시관을 쓰신 상처를 보며 자신의 저지른 잘못된 지난

날의 일들을 기억했습니다.

자신이 했던 일들이 예수님의 상처의 흔적이 되었음을 알았고 무릎꿇어 회개합니다.

결국 바울은 일생을 예수만을 전하고 사는데 온 생애를 다 바쳤습니다.

바울은 진정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예수의 합당한 종으로 살았습니다.

 

당신은 무슨 짐을 지고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자기가 져야 할 짐도 지지 않고 남에게 지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좋아서 남의 짐을 대신 져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져야 할 짐은 복음을 전하다 받은 상처, 핍박의 흔적입니다.

그 흔적이 죽음이라면 더욱 영광의 면류관이 됩니다.

짐이 무겁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짐의 무게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쓰임 받는 사람은 그 짐의 무게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즐깁니다.

기뻐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에게 있는 예수의 흔적은 무엇입니까?

예수의 흔적이 몸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바울을 보십시오.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바울을 보십시오.

무엇이 이런 핍박을 자랑할 수 있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를 만났고 그 은혜의 깊이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정말 가야 할 본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내게 십자가의 흔적은 죽음의 흔적입니다.

예수를 믿기에 받은 거절, 핍박, 무시, 버림받은 모든 상처들이 흔적입니다.

이것을 지고 다닌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의미심장합니다.

우리에게도 사업 실패의 상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상처, 자식으로 인한 상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상처들이 있습니다.

이젠 그것을 복음으로 의미화시켜 그 상처가 예수의 흔적이 되도록 노력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 우리 몸에도 예수 십자가의 흔적이 남게 됩니다.

내 얼굴에, 내 언어에, 태도에, 습관과 인격과 관계에 모든 삶에 예수의 흔적이 남게 됩니다.

그러나 보통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딱딱한 딱지가 되어 굳어 버리지만 예수의 십자가 흔적

은 시간이 지나도 잘 아물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늘 아픕니다. 저립니다.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과 저림과 고통은 절대 바꿀 수 없는 영광을 얻게 합니다.

주님 역시 십자가의 고통을 넘어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No Cross, No Crown!’(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우리는 물질을 사용해도 예수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는 봉사와 헌신을 해도 예수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찬송할 때도 예수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일생 동안 예수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주님께 드린 시간 때문에 내가 써야할 시간이 손해를 보고, 주님께 드린 봉사 때문에 내가 해

야 할 꼭 필요한 일이 손해가 되고, 주님께 드린 물질 때문에 내가 꼭 써야할 곳에 돈을 쓰지

못하는 어려움이 생길 때 우리는 그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거기에 예수의 흔적이 남게 됩니다.

 

사실 많은 성도들이 이 순간에 타협을 하며 그 예수의 흔적을 지워버립니다.

그리고 힘들었다고만 합니다.

하지만 그 힘들고 어려운 것이 그것으로 그만이기에 주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됩니다.

흔히 그런 것과 그럴 뻔 한 것은 다릅니다.

당한 것과 당할 뻔 한 것 또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즐거움을 버린 흔적이 있습니까?

세상에 대하여 죽은 흔적이 있습니까?

지금도 많은 성도들은 예수의 흔적을 남기기보다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애씁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흔적을 남기고 사셨습니까?

그게 나만의 흔적이었다면 이제라도 바울처럼 예수의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예수를 위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도망치고, 굶고, 잠도 못 잤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위해 복음을 온 세상에 기쁨으로 전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나의 흔적을 많이 남긴다 한들 예수님이 기뻐하실까요?

세상에 남겨진 나만을 위한 흔적이 천국에서 어떤 효력이 있을까요?

주님과도, 천국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흔적이라면 이 땅에서 애쓰고, 힘쓰고, 노력하며 사

는 아등바등하는 모든 흔적이 헛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믿음의 흔적들이 오직 예수님과 관계된 흔적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 때문에 매를 맞아도, 비난을 받아도, 놀림을 당해도, 손해를 당하고, 쓰러지고, 넘어질

지라도 오직 예수의 흔적을 몸에 새겼다고 자랑스럽게 고백하는 바울처럼 이 예수의 흔적을

많이 남기며 남은 일생을 자랑하고 사는 믿음의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사나죽으나 주의 것인 우리가 세상에서 자신의 안위와 자랑만 생각하고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남은 일생 예수님 때문에 세상 것들을 포기하며 살게 하옵소서.

내 삶에 주님을 위한 희생의 흔적이 남게 하시고 날마다 주를 위한 헌신하는 삶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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