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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베드로전서 1장 13~16절 "순종하는 자식처럼"

by 주님과 함께하는 삶 2024.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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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13~16"순종하는 자식처럼"

 

 

베드로전서는 로마 황제 네로의 기독교 대박해를 앞둔 시점에 사도 베드로에 의해 기록된 말

씀으로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소아시아의 5개 지역에 있는 그리

스도인 공동체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A.D. 49년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41-54)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던 유대인들은 로마로부

터 추방을 당해 바다건너 멀리 오늘날 터키지역까지 강제로 이주당해 낯선 땅에 원주민들 속

에 갇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며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또한 로마제국 도처에서 믿는 자들은 공격과 모진 핍박을 받았는데 그 핍박이 너무 심하여 그들은 목숨을 구하지 위해 도망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통과 환란을 겪으며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조롱과 핍박을 받는 디아스포

라의 삶은 평탄하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확실함과 불안정한 삶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안전한 곳에서 생계를 꾸려 나가며 신앙을 지켜나가고자 애쓰는 그들의 모습들을 그려보세요.

이들에게는 굳센 격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수 있습니까?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받는 사람을 어떻게 격려하여 강하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사람이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거기에는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이 있습니다.

그가 구원받았다는 것과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 아래 있다는 절대적인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 분명히 말해 줍니다.

우리의 안전은 우기가 구원 받은 것을 아는 것과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는 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편지로 위로하며 그들에게 소망을 잃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 중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거듭났으며 아울러 산 소망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옛적부터 선지자들이 줄곧 밝혔었고 천사들도 보고 싶어하는 예수님의 고난 후에 받을 영광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고난 후에 받을 영광이 예수님에게만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 있는 각 처에 흩어져 힘들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너희들에게도 고난 후에 받을 영광이 있으니 소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13절 하반절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의 때에 너희에게 주실 은혜를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여기서 바랄지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3절에 소망으로 번역된 헬라어의 동사형으로써 소망하다를 의미입니다.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소망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몇 가지 신앙적 실천

사항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13)입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허리를 동이는 표현은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길고 헐거운 겉옷을 입고 허리에 띠를 둘렀습니다.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 그들은 긴 옷을 모아 띠로 꽉 조여 옷이 펄럭거리지 않아 일에 방해되지 않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앞두고 10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시고 유월절 어린 양 고기를 급히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양의 고기를 먹을 때에는 허리의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허리를 동이는 것은 긴박한 상황일 때 쓰는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은 육체의 허리를 동이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써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의미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근신하여 목표에 매진하라는 것인데 그것은 주님이 오실 날을 생각하며 현재 바른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느슨한 생각들을 정리하라 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진장시키라 십니다.

다가오는 구원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4:8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분명하고 간결하게 기록하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는 생각이 해이해져서 여기저기 헤매며 정욕과 세속적인 것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거듭나기 전에 했던 사욕을 따르지 말라(14)입니다.

14절을 보면,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온갖 욕심을 따라 살았지만 이제는 순종하는 자가 되었으니 욕심을 버리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거듭나 새사람이 된 사람은 욕심을 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욕심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성령님이 마음에 있을 자리가 없기에 거룩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거듭났다면 마음의 온갖 사욕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뒤에 이어진 말씀으로 인해 오해하기 쉽습니다.

'순종하는 자식''전에 알지 못할 때에 사욕을 따르던 사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식' 앞에 '하나님 말씀에'라는 말을 붙여 보십시오.

그러면 '너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라는 말씀이 됩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자식'은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사욕을 본받지 않습니다.
거룩한 이처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됩니다.

본 메시지는 '순종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고 그것은 곧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의 수신자들은 이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 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사욕을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욕'이란 '에피뒤미아''충동이나 욕망, 갈망'의 의미하는 말입니다.

순종하는 자식은 이런 충동, 욕망, 갈망을 따르지 않고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우리가 거룩해야 할 이유는 우리를 부르신 이,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16절로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레위기 11:44, 19:2, 20:7의 말씀을 인용한 구절로 레위기에서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거룩은 세상과 구별됨입니다.

거룩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행실에서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 구별됨이 있을 때에만 거룩해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입고, 먹고, 집을 장만하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거룩해지겠습니까?

'거룩'이란 '하기오스'라는 단어로 '신에게 바쳐진', '구별된' 의미입니다.

하나님께는 아무거나 드릴 수 없습니다.

'흠 없고 순전한 것'으로 구별된 것을 드립니다.

이것은 '물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실입니다.

우리의 행실이 흠 없고 순전해져야 합니다.

본문은 이분법 적입니다.

두 가지 행실이 나오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 따르던 욕망, 욕구, 갈망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따라야 하는 거룩입니다.

조금 속상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선함이 없고 사람의 욕망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다릅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 많은 존재인지 알게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인생이 얼마나 죄 많은 인생인지 알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다를까요?

하나님의 뜻과 다른 욕심이 우리에게도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아직 사욕을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두려움으로 지내라

17절을 보면, 심판하시는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외모를 보시지 않는 것과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것이 상충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이께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 맞습니다.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는 의미는 편견없이 공정하게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편견과 차별로 사람을 판단하나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으십니다.

악한 마음을 품은 사람이 아무리 겉으로 치장해서 선하게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정확히 가려내

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베드로전서 묵상 이전에 야고보서를 묵상했습니다.

그 때에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은 믿음으로 온전하게 됨을 묵상했습니다.

일시적이면서 사람의 눈을 속이는 거짓된 행위를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선한 행위를 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악한 행위를

합니다.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은 믿음에 기초한 행위인지 또는 불신에 기초한 행위인지를 정확히

구분해서 심판하신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편견없이 공정하게 그리고 정확히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소망하고 사는 사람들이 근신하고, 사욕을 따르지 않고, 거룩하고,

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과거 헛된 행실로부터 오직 흠 없

고 점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써 대속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 가운데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 역시 하나님께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압니다.

거듭난 사람에게 산 소망을 잃을 수 없는 이유는 거듭남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씨가 되어 태어난 사람은 결코 썩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절망할 수 없는 이유는 결코 썩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소망을 잃을 수 없습니다.

그 소망은 산 소망이 되고 죽은 소망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르지 않고 시들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세세토록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된 우리들 역시 영원한 존재들입니다.

어떠한 고난 중에도 산 소망을 잃지 않고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고, 사욕을 따르지 않

, 거룩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순종하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욕심을 따르는 삶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삶에 '종교'를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지기 위한 '악세사리'를 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 선해 지기 위해서 '기독교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 자체로 우리의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생의 골인 지점이 달라집니다.
살아가는 이유가 바뀝니다.

삶의 방향이 바뀝니다.
내 맘대로 결정하고 내 맘대로 정했던 삶에서 떠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고난 속에서라도 산 소망을 잃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주님!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요, 특권이며, 기쁨인지를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직 주님께서 나의 주인 되시어 나를 온전히 주님께만 순종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주님께 순종함으로 말할 수 없는 영광을 드릴 수 있게 하옵시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육체의 안일함을 추구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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