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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마태복음 14장 22-23절 나는 아는가? 주님을!

by 주님과 함께하는 삶 2024.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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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22-23절 나는 아는가? 주님을!

2016.06.26. 메디윌병원

오늘 본문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 기록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해결책이십니다.

말씀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맹인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는 기적으로 무리들은 동요하고 놀라며 수군수군 거립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가 괴롭힙니다.

세상 삶을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만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직장에 가지 않아도, 사람들과 아우성치며 땀 흘릴 필요도, 먹기 위해 바삐 일하지 않고 은혜로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배고픈 것이 현실입니다.

가정을 돌봐야 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 하고 세금도 내야하고 군대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로 매일 필요를 채워야 하며 삶의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오늘 이 현장에 청중들이 모여 있고 이들에게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무리들은 하루 종일 주님의 말씀 들음에 집중하다 보니 식사의 때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말씀도 좋지만 이제 배고픈 현실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15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세요라고 주님께 간청합니다.

이에 주님의 대답은 아니다 입니다.

주님의 현실 대처는 제자들과 달랐습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줘라십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말씀인가요?

제자들에게 많은 무리들을 먹일 만한 분량의 빵이 있습니까?

이 상황에 누구라도 주님 농담하시나요?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흩어져서 각자 알아서 사 먹게 할까요?”

한두 사람도 아니고 오천 명이 넘는 사람에게 어떻게 먹을 것을 준다는 말입니까?

마을에 가서 각자 사먹으라는 제자들의 제안이 잘못되었나요? 아닙니다.

합리적인 말입니다.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그 누구도 납득할 수 있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그 일을 할 수 없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인본주의로는 우리의 만족을 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자원들은 세상의 필요들을 채울 것 같지만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결코 이루어 낼 수 없지요.

우리의 노력과 능력은 약간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지만 영원한 만족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무리를 보내는 것이 정답일까요?

이 방법이 최선일까요?

왜 인간 자체만으로 세상의 모든 필요들을 채울 수 없습니까?

인본주의가 우리의 유일한 해결책이라 떠들지만 왜 자꾸만 실패합니까?

우리가 매일 실패하는 이유는 곤궁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비참하게 실패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의 눈이 오직 땅에만, 먹고 사는 것에 고정되어 있기에 때문입니다.

 

18절을 보면 주님은 안드레가 찾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시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찾은 것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의 모든 인적 자원들을 가져오라 십니.

우리가 가진 것들을 주님께 갖다 드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자원들은 놀라울 정도로 불어나 세상의 필요들이 채워지게 됩니다.

 

벳세다 들녘에서 말씀을 듣는 무리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배고픔보다 말씀 듣는 것이 귀하기에 배고픔을 참습니다.

어떤 이는 말씀듣기보다 먹는 것이 유선이기에 듣기를 포기하고 먹기 위해 집으로 갑니다.

어떤 이는 무리들 속에서 말씀을 듣는 것 같지만, 듣기를 집중하지 않고 먹을 것이 어디 있나 이리저리 찾기 바쁩니다.

어떤 이는 혼잡한 무리 속에서 사람들로 나갈 수가 없기에 억지로 배를 쥐어짭니다.

그런데 자꾸만 이곳저곳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서 무리들은 동요합니다.

 

이에 주님께서 오병이어를 축사 하신 후 떼어 주는 떡과 고기는 무리와 제자들 모두 배고픔이 해결되었습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필요가,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어 사라집니다.

오병이어는 작고 작은 것이지만 주님께 가져갈 때 놀라운 역사를 이뤘습니다.

오천 명을 먹었습니다. 아니 이 무리들이 배불리 먹고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마음속 깊은 곳에 근원적인 문제를 갖고 있기에 계속 육체적 필요들을 느끼게 됩니다.

이 필요를 채우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받은 우리의 달란트를 함께 나눌 때 모든 사람들의 필요가 채워지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채워짐은 위대한 것, 큰 것, 훌륭한 것만 가능한 것이 아니요. 우리의 작고 작은 오병이어입니다.

거기에 넘치는 충분함이 있고 만족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필요가 채워집니다.

 

그러나 필요를 아는 것과 나누겠다는 마음만으로는 그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그 곳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는 은혜를 모두가 경험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풍족한 축복을 받은 후에는 어떤 모습인가요?

가난했던 지난날의 모습을 잊고 오늘의 풍족함을 나만을 위해 과용합니다.

자기에게 필요치 않는 것조차 움켜지며 쌓아둡니다.

또한 이런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잊고 나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남음이라는 단어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인 냥 헛된 것에 펑펑 낭비합니다.

다른 사람들 필요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나만 있으면 된다고 외면합니다.

당신은 어느 부류에 속하나요? 스스로 질문을 던져봅시다.

 

벳세다 들녘에 엄청난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대하지도 않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몸소 체험한 수많은 무리들은 얼마나 충격을 받고, 환호했을까요?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직접 체험하고 경험했는데 그냥 있었을까요?

문제가 해결되고 기적이 일어났는데 모두가 아무런 반응 없이 그냥 아이 좋아라 했겠습니까?

지축이 흔들리는 함성과 고함으로 모두가 흥분한 상태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무리가 모인 곳에 조그만 이슈꺼리라도 있다면 사람들은 몰려와 소리치고 흥분하며 요란스럽게 떠드는 것이 당연 합니다.

제자들도 이 광경을 보며 놀랍니다.

무리들은 자기의 필요에 충족하는 빵을 있게 하신 예수님을 통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을까요?

그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었던 제자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얼마나 우쭐대고 싶었을까요?

 

이 때 주님은 22절 보면 시 제자들을 재촉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어떤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급히 보내실까요?

 

오늘날 연예인과 유명스타들이 나타나면 보기위해 몰려드는 인파들로 아수라장이 됩니다.

싸인 받고, 사진 찍고, 포옹하고 아우성치며 환호하는 광경이 흥분의 도가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은 영웅적인 행동으로 무리들을 선동하여 자기의 야망을 채우려 합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의 잇속을 채우며 인기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

주님은 제자들을 너무 잘 아셨습니다.

기적을 체험한 현장에서 흥분을 잘하는 제자들이기에 무리들보다 먼저 배로 떠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무리와 합세할 때 더 문제를 만들 수 있음을 익히 아셨습니다.

그래서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을 보내신 다음에 주님은무리를 보내셨습니다

기적을 직접 체험한 무리이기에 계속 말씀을 전해도 반응이 뜨거울 텐, 왜 모여 있는 군중들을 순식간에 흩어 보내셨을까요?

위기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는 세력이 갑자기 나타난 위기가 아닙니다.

배고픔이 배부름으로. 부족함이 풍족함으로 채움을 입어 생긴 위기입니다.

혼자는 수 없던 문제를 말끔히 해결 받은 자들로 생긴 위기였습니다.

 

그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잘못 알았기에 발생한 위기입니다

사람들의 의도를 아셨던 주님은 이를 피하기 위하여 사전에 무리들을 흩어 보내십니다.

 

요한복음 614-15에는 이 사실을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치적 메시아로, 세상 임금으로 삼아야겠다는 혁명적인 분위기가 지금 무리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지금처럼 먹고 살기 어려운 때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주님을 왕으로 세울 때 자신들의 안위가 걱정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리석게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 오해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어 무거운 짐을 벗었는데 여전히 나의 안위만을 위해 주님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은혜를 체험한 무리들은 내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장본인들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상과 허상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허상을 붙들고 민중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 엉뚱한 생각을 구상합니다.

이것이 나의 실제의 모습입니다.

 

23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그 후에, 예수님 자신도 홀로 물러가셨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는 경제적인 문제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빵의 문제는 비단 오늘 날만의 문제가 아니라 2,000년 전 예수님 당시에도 군중들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지도자로, 왕으로 세우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균형을 항상 유지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역을 멈출 시간을 아셨고 불쌍하다고 해서 무리에게 휘둘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로 예수님의 영과 육은 탈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아신 주님은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보고 기도하는 시간, 영적으로 충전할 시간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빵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생의 근원적인 죄를 사하시며 영혼을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이 땅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무리들을 흩으시고, 제자들을 재촉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문제에만 정신을 쏟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흩으시고, 재촉하신다는 말씀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청중을 흩으시고 인기를 거절하시고 민중의 혁명을 거부하셨습니다.
무리를 흩으신 주님은 제자들과 그 상황을 함께 하시지 않고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진정 우리의 모범이시기에 위기 때마다 기도하셨습니다.

30년 동안 사역을 준비하신 후 복음사역을 시작하실 때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셨고,

57을 보면 십자가를 앞두고 인간적인 갈등 속에서도 이 십자가를 꼭 져야 합니까라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무릎 꿇고 울부짖어 통곡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아신 분이셨습니다.

인간에게 호소하지 않고 하나님께 호소하셨으며, 사람의 숫자와 민중의 세력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 의탁하셨습니다.

 

큰 성취와 기적 후에도 홀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고, 저물도록 혼자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쁘고 일이 많을수록 더 기도해야 하며, 쫓길수록 조용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수많은 인기와 함성 소리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떠나고 장소를 떠나서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짓누르고 풀리지 않아 마음 아프게 하던 문제가 주님의 은혜로 해결함을 받았습니까?

생애에 중요한 어떤 결정의 순간에 와 있습니까?

결혼을 앞두고 있나요?

군에 간 자식이 있습니까?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려 합니까?

어려운 구조조정에 직면 해 있나요?

흥분하지 말고 사람을 쫓아다니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세요.

 

믿음의 사람은 홀로 하나님과 교제하며,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일이 잘 될 때나 어려울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평정심을 찾아 하나님의 뜻과 길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기도하며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고 우리에게 기도의 산 증인이 되셨습니다.

기도하는 자 절대 쓰러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자 우리 주님을 바로 아는 자요, 믿는 자요 신뢰하는 자요 사랑하는 자입니다.

 

기도

영원한 생명이시며 우리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신 주님!

오늘 오병이어의 축복이 내 안위만을 위한 주님으로 잘못 아는 우리가 아닌지 점검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내 편의를 위해 주님을 찾는 초보적인 믿음을 버리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능력이신 주님을 내 전부로 삼는 믿음의 용사로 만들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축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 오병이어의 축복을 주신 주님을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 받고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 살기로 다짐하는 머리 숙인 모든 영혼들 위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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