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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고린도전서 9장 16 ~ 23절

by 주님과 함께하는 삶 202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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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관점

 

16: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다.

본문에서 바울은 예언자의 신학(prophetic theology)에 대한 논리적인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그게 3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로,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는 진술과, 둘째와 셋째는 그 이유이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있는데, 이는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히브리 예언자들이 신의 말씀을 전한다고 거만하거나 뻐길 수 없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언자가 되는 것과 같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언자의 마땅한 과제이고 의무이다. 집배원이 편지를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듯 바울도 복음을 선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예언자적 신학에서 보면 이 의무는 신에 의해 한 사람에게 부여된다. 따라서 이 과제는 자만이나 자만심의 이유가 되지 않고 충실하게 소식을 전할 이유가 된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저주의 형태를 띤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는 역동적인 예언자적 신학적 추론에서 귀결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면 복을 받고, 그 의무를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 바울은 여기서는 저주에 대해서만 말하는데, 곧 복에 대해 말을 한다.

17: 나의 뜻이냐 하나님의 뜻이냐?

이 말은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22:42)라는 기도와 같은 취지다. 하나님이 복음 선포의 의무를 기꺼이 면제해주실 가능성이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바울은 이 과제와 연관된 삯(보상)과 청지기적 사명에 대해 논의를 전개한다. 바울은 상과 벌에 관한 신학적 원칙을 새롭게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바울은 삯(wage,,응당보수)을 받는 일꾼과 특별한 직무(oikonomia, dispensation, 사명, 직분, commission, administration, stewardship)를 부여받은 청지기의 이미지를 상호 연결하고, 우리가 예상하는 “순종->, 불순종->벌”의 도식이 깨진다.

18: 어떤 경우에도 삯을 받게 됨

일반적으로 일꾼은 자신이 하는 일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해도 삯을 받기는 한다. 앞에서 저주에 대해 말했던 바울은 이제 복에 대해 말한다. 그가 과제를 수행함으로 받게 되는 삯(wage)은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다. (the authority to exercise his duties in a manner he chooses), 즉 그가 수행한 일에 대해 어떤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관심은 벌과 상이 아니고, 삯을 받는 것과 자유이다.

2 19-22: 책임있는 자유

예언자가 노예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나온다. 바울은 노예가 될 수도, 유대인이 될 수도, 율법 아래 있는 사람, 약한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자유(all things to all people)를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다양한 사람들을 얻기 위해(to win) 이 모든 역할을 취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주제가 깔려있다. 하나님과 예언자는 어떻게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최선의 것을 행하도록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사람들을 단순히 명령함으로 강제로 무엇인가 하도록 하는 것이 용납될 수 있는가? 바울은 삯과 청지기의 개념을 도입한 후, 그는 “얻는다” (kerdaini, win)는 그리스어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이 단어는 발생하는 이윤을 뜻하기도 하고, 바울은 여기서 win-win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새로운 축복을 “얻는” 상황 속에서바울 스스로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책임있게 완수하는 목표도 “얻는다.” 이것이 신의 은총의 속성이다“얻는다”는 단어를 반복 사용하면서 22b의 “구원하려는”이라는 목표에 도달한다바울이 같은 절에서 “약한”(weak)이라는 표현을 했는데이는 “병든”(sick)과 같은 뜻이어서 “구원”이라는 동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이 동사는 “치유”(heal)라는 뜻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바울의 더 큰 목표는 삶 속에 치유회복안녕을 가져다주는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23:바울의 축복

바울은 축복의 신학적 주제로 다시 돌아오면서 단락을 맺는다. 신학적으로 축복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진해서 수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역설적 역동성(paradoxical dynamic)은 기독론의 핵심이다. 21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율법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 아래 산다고 말한다. 바울의 기독론은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에게는 약하게 보인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2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부여한 책임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저주나 노예적 강제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복음 안에서,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석적 관점

▶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의 복음 선포와 목회사역의 중심원칙을 말하고 있는데 믿음의 일상적 실천은 다른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형성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9장 처음 14절에서 고린도교회의 논리나 사회적 규범(7-8) 그리고 성경적 권위(8-12) 그리고 주님의 명령(14)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지만 복음에 충실하기 위해 이 자유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16-17절에서 그의 결심을 확고히 하는데 그가 사도가 된 것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는 그의 이전 삶에서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리스도의 주되심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for(gar)라는 단어를 네 번 반복해서 사용한다. “나는 어쩔수 없이 그것을 해애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6) 그래서 그는 복음을 위해 값없이 전하고 전하는 데에 따르는 권리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 바울의 입장 “모든 것에 자유하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19) 바울은 다른데서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비유하지만(1:!; 1:10; 1:1),여기에서는 ‘모든 사람에게’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 형태의 종됨은 당연한 결과인데 그리스도의 종됨은 다른 사람을 위한 목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20-23에서 이러한 입장을 구체화한다. 19b와 23b가 이 부분의 틀을 형성하는데‘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몇 사람이라도 구하려는 것’이다.

-20 유대사람이 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본래 유대인이다.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같이 되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율법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이방인들과 같이 되었다고 말한다. 핵심적 원칙은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사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이해하는 모든 삶을 평가하는 표준이다.

▶이러한 예들은 바울의 주된 관심 즉 ‘약한’자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해 잘 보여준다. 세 기가지 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율법아래 있는 자’와 ‘바깥에 있는자’를 대비하지만 여기에서는 ‘강한 자’와 ‘약한 자’를 비교하지 않고 후자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그는 ‘약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라 ‘약한 사람과 같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결론적으로 이러한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해 한 것이라고 말한다.(23) 그런데 이것은 모순된다. 그는 개인적 이득을 얻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여기에서는 복음의 복에 동참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은 그가 다른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선물을 받는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자신의 노력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유형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목회적 관점

 

고린도교회의 강한 자들이 우상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는 것은 신학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바울은 강한 자들에게 약한 자들과 연대하라고 촉구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은 어떤 일에 대한 그 사람의 권리보다 훨씬 중요하다.

9장에서 바울은 처음으로 사도로서 그의 권리에 대해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즉시 이 권리를 포기한다. 그는 그 자신을 예로 들어서,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롭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이다. 바울은 자신을 철저하게 약한 자들과 동일시해서 특권과 영예를 포기했고, 가난한 사람들처럼 노동을 해서 자신을 후원했고, 고기 먹는 것을 거절했다.

이런 결정은 일반적인 원칙이나 행동 규범을 적용한 결과가 아니었다. 이것은 관계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란 유대인과 그리스인, 강한 자와 약한 자처럼, 다른 사람이 자기와 다른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동일시하는 근본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약한 자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이고 복음이 말하는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을 계속하는 것이다.

교회는 자원봉사자의 공동체가 아니라, 그 자체가 복음의 한 부분이고, 기쁜 소식이다. 이렇게 자신을 내어 주는 방식으로 사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된 우주에 관해 보여주고자 하는 종말론적 표징이다. 바울에게는 공동체가 어떻게 자신의 생활을 규정하고 교인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하는지 하는 것이 하나님이 세상과 화해하신 데 대한 선포의 부분이다. 교회는 이런 새로운 실재에 성육신하고 살아남고 선포하기 위해 존재하게 하신 공동체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전적으로 동일시하고, 그들 자신이 되고, 자신이 진짜로 변형되는 경험을 하는 근본적인 자유를 발견하기를 요구한다.

바울의 입장은 어떤 갈등 상황에서도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하는 것일까그렇지 않다바울은 10:29-30에서 강한 자에게 말한다“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의 비판을 받아야 하겠습니까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면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방을 받을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8장이 약한 자에 대한 강한 자의 책임을 말한다면여기서는 강한 자를 위한 약한 자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바울이 양쪽 모두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들 모두가 서로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갈등하고 폭력적인 세상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적대자들과 하나가 되는 법을 배우고, 변형시키는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 된다면, 교회는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희망의 표징과 증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설교적 관점

-고린도전서 9장은 고린도전서 8:1-13에서 논의된 주제 곧 바울이 고린도교회 한 그룹에게 교회를 위해 자유를 제한할 것을 권면한 것(신앙이 약한 자들 앞에서 우상제물을 먹지말 것)에 이어진 것이다. 오늘 본문은 매우 자서전적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에 이어 자기제한의 원리를 보여준다. 즉 공동체의 선을 위해 사도로써의 자신의 권리를 제한한다. 설교자는 스스로 공동체를 위해 바울처럼 자신의 권리를 제한한 간증형식의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일은 자화자찬식이거나 생색내기 혹은 교인들보다 내가 더 거룩하다는 식으로 가게 되면 청중들은 귀를 닫게된다는 점이다. 아니면 이 예를 교인들이나 교인들이 알고 있는 어떤 단체를 예로들어 보여주어도 좋을 것이다.

-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이 지닌 사도의 권리와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다른 사도들의 예를 들고 (고전 9:5) 또 군 복무, 농사일, 양치는 일등의 관행[댓가를 받음], 구약성서의 특정구절 (9:8-10),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9:13) 그리고 예수의 명령(9:14)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를 고려하지 않는 위험성이 있지만 바울은 자신의 입장을 성서(Bible), 경험(experience), 전통(tradition) 그리고 이성(reason)에 기초하여 말하고 있다. 설교자는 바울이 한 주제에 관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방식에 따라(성서,경험,전통,이성의 4가지에서 근거를 밝힌 것) 교인들이 신학적 주제에 대한-예를 들어 삶의 목적, [다문화사회에서] 다른 인종과의 관계, 부의 분배, 사형제도, 불신자단체에 교회를 개방하는일등-해석을 해보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감리교 신앙의 네 기둥-Four Pillars of Methodism: 성서, 경험(체험), 전통, 이성]

-고전 9:16 하반절에 바울은 소명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이 주제는 설교자에게 설교직과 보다 광범위한 목회적 소명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것을 담은 설교는 평신도들이 목회에 대해 보다 나은 인식을 가지게 하고 자신들의 삶을 생각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고전 9:19-23에서 바울은 목회자와 교인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목회신학을 서술한다여기서 바울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유대인이방인약한 자들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그들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바울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점으로부터” 복음이 주는 소망을 이해하도록 도우려고 한다설교자는 이 관점을 설교를 비롯한 모든 목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교회는 주변에 살고있는 사람들 그리고 예배와는 다른 영역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어떻게 일할 수 있을까?

-바울은 고전 9:3-12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댓가가 있어야함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사도가 “먹고 마실 권리” 곧 사도직을 수행함에 있어 물질적 후원을 받는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바울의 이 입장은 모든 노동자들은 음식, 의복, 주택등 물질적 필요와 관련하여 적절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미를 포함해서 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리는 오늘날 이 본문은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충분한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를 암시적으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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