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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데살로니가전서 1장 6~ 10절 모범적인 신앙이란

by 주님과 함께하는 삶 2022.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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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1장 6~10절 모범적인 신앙이란? 
2004. 8. 11. 은혜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문

빌립보에 이어 두 번째로 유럽에 세워진 교회는 그리스 북쪽 마게도니아 지역에 위치한 고대 도시 데살로니가입니다.
오늘날 지명은 테살로니키로 내일(12일) 새벽 우리나라가 그리스와 아테네 올림픽 축구예선전을 치루기 위해 올림픽 국가대표팀이 처음에 도착하여 준비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는 로마와 동방을 잇는 주요 도로상에 있던 도시로 전략적으로,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로 당시 12만 인구가 살던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무역과 상업의 번창으로 자연히 부도덕한 일들이 자리 잡아 우상을 숭배하던 이방인들의 도시였습니다.

7절의 "너희가 마게도냐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는 구절과 8절의 "너희 믿음의 소원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라는 구절은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나의모습이 우리 성도들에게 이처럼 본 받을만한 믿음, 소문난 믿음으로 보이고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믿은 우리들이 신앙의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요?
부모의 모습이 자녀들에게 신앙적으로 어떻게 보여지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모든 사람들이 본받고 싶은, 소문날 정도로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과연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환란 중에서도 성령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삶이였습니다.
사도행전17장 1절 이하에 보면 바울과 실라와 스데반이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으며 데살로니가 지역에 복음을 전함으로 크게 확산되자 이를 시기와 협박하는 유대인들을 피해 바울 일행들은 3주 이상을 견디지 못하고 도시를 떠나던 곳입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이제 막 예수를 믿기 시작한 어린 신자들은 신앙생활 초기부터 많은 박해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 충만했기에 그들은 담대할 수 있었고,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모범적인 신앙으로 믿음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변화된 삶을 살고자 할 때 환란과 핍박이 우리를 위협해옵니다.
이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변화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전투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주님은 이를 가리켜 '좁은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길은 좁은 길이요, 그 길을 가는 동안에 반드시 환란과 핍박, 시련과 어려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겪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산다는 것은 지금까지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영적인 기쁨을 갖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환난을 당하나 이길 수 있습니다.
달갑지는 않지만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이기에 세상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이 좁은 길을 걸으며 느끼는 기쁨이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적인 특권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기꺼이 그 길을 선택했던 순교자들의 삶이 이를 증거해 줍니다.
순교의 자리는 아니더라도 예수 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고자 애쓰면서 느끼는 어려움과 고충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에 기쁨을 안고 우리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환란 중에도 위로와 기쁨을 누리는 삶,
우리가 본받아야할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환란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역의 교회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미약한 교회였지만 주님께 너무나 헌신한 나머지 그들의 증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것은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의 행실을 본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 감옥에 갇히는 환난가운데서도 기뻐하며 찬송을 불렀던 것과 같이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 기쁨으로 환난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말로만 본받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서 사도 바울을 본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바울을 본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당시 전통과 뿌리를 자랑하는 고린도교회는 심각한 많은 문제들로 인해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믿기 시작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교회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예수의 본을 보여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서 '본'이라는 말은 '모범'이란 뜻으로 '자국을 낸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금형 틀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철판처럼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의 틀에 찍혀 예수의 삶을 내 삶 속에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통해 소개받은 예수님을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자스민 꽃을 아시지요.
자스민 하얀 꽃 색깔이 잎사귀의 연한 녹색과 비슷하여 그 꽃만으로는 도저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없는 참 소박한 꽃입니다.
거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이지만 곁을 지나치게 되면 바람결에 스쳐오는 그 꽃향기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화려한 색깔과 아름다운 자태 때문에 이끌리고, 냄새도 맡아보게 되는 꽃들과는 정 반대로 자스민은, 오히려 그 향기 때문에 꽃이 어디 있나? 찾아보게 되는 그런 화초입니다.

8절의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복음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실제적인 자신들의 삶과 연결지었습니다.
우상숭배와 타락한 기존 생활의 틀에서 벗어나 복음 안에서의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삶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실천적인 믿음은 자스민 향기처럼……. 알고 있는 사람과 주변 도시들로 자연스럽게 퍼져 갔습니다.
송이도 탐스럽고 빛깔도 현란하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면, 아무런 향기를 풍기지 않는 꽃들이 참 많이 있지요.
그러나 겉보기엔 수수하고 소박하지만, 진한 향기를 내 뿜어내는 자스민은 참 크리스천의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를 조용히 대변해주는 겸손하고 사랑스런 꽃입니다.

고후 2:15~16절에는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의 본을 보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의 본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를 잘 믿는 다른 사람에게서 그 모습을 배워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이 전도한 사람은 그를 전도한 사람처럼 예수를 잘 믿습니다.
그러나 전도한 사람이 본을 보이지 못하고 대충 신앙생활을 하면 배우는 사람도 대충 믿게 됩니다.
바울은 고전11:1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나는 완전무결하니 나를 따르라'는 말씀일까요? 아니지요.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까지 말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를 본받아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며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선배된 우리가 신앙의 후진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본받고 그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본받는 삶을 살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일이겠습니까?
먼저 믿은 우리들은 유격훈련장의 조교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9절 하반 절에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전까지 섬겼던 우상을 버리고 참되신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만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기다리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인내와 확신을 가지고 끈질기게 기다렸습니다.

우리 은혜교회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가요?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신앙을 굳게 하며 기쁨을 갖고 주의 날을 예비하며 사는가요?

사랑하는 은혜교회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의 출발점은 이전의 모든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만 유일신으로 섬기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병행하거나 섞어서 섬길 수는 없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상에서 바알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합니다.
간혹 살면서 우상 앞에 절해야 할 상황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결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착취하거나 괴롭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분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면 하나님은 더 큰 은혜와 복으로, 더 큰 사랑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이 귀한 신앙을 본받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성경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기를 소원하며,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는 교회, 그리스도와 바울을 본받는 교회,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내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믿음의 진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내가 처한 환경을 탓하지 말게 하시고 불평, 원망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삶을 주옵소서.
나는 비록 연약하지만 내 주님을 의지하여 강한 능력을 덧입어 믿는 자의 본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을 간직하며 예수의 향기를 날리며 살기를 원하오니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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