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0편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 50, 210, 350장
2004. 8.8 은혜침례교회 주일 오후예배 설교문
본문 110편은 '메시아 시'로 메시아를 가장 직접적으로 예언한 것으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을 완전히 정복하시고 영원히 통치할 것을 예언한 시입니다.
1절은 신약에서 스무 번 정도 인용되었고, 예수님도 인용하시고, 베드로도 오순절 설교에서 인용하고, 바울도 인용하고, 히브리서 기자도 인용한 구절입니다.
시편 110편 우리가 헌신해야 할 분을 왕으로, 제사장으로, 심판주와 승리자로 묘사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왕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의 보좌에 앉으신“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헌신해야 할 영원한 제사장은 우리 죄를 정결케 하시고 하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당신의 권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믿는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헌신하는 백성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헌신해야할 때는 언제인가요? 바로 오늘이요. 지금입니다.
주님께 속한 “주의 백성으로 우리는 어떻게 헌신해야 할까요?”
3절을 보면“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러분과 저는 주의 군사이기에 우리 주의 기치가 휘날리는 그곳에 함께 모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헌신하고 있습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싸움은 주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 왕의 승리를 위한 것이기에 헌신하는 자세를 날마다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백성 된 우리는 어떻게 헌신해야 합니까?
우리의 재능, 힘과 지혜를 드려서 헌신해야 할 분이 누굽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찬송가 71장을 부르면서“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라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내게 주신 물질을 얼마나 주께 드렸나요?
지금껏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것은 얼마인데 하나님께 드린 것은 얼마입니까?
내가 드린 물질과 헌신이 내가 하는 신앙고백과 어울리는 것인지 스스로가 질문을 던져 보세요.
우리는 내가 섬기는 왕의 이름에 걸맞게 헌신해야 합니다.
3절이 보여주는 헌신자의 모습은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새벽이슬을 관찰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아름다움을 눈여겨보신 적이 있습니까?
새벽이슬은 깊은 밤, 새벽이 되려는 시간에 고요하게 산천초목 위에 촉촉이 내립니다.
이슬은 요란하게 내리지 않습니다.
깊은 밤 소리 없이 내려 온 초목을 적셔 생명을 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의 이슬은 초목에게는 생명과 같습니다.
팔레스타인은 한 낮에는 햇볕이 매우 뜨겁기에 식물들에게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우리나라처럼 비가 자주 내지 않기에 물이 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산천초목이 필요한 물을 새벽이슬이 유일하게 채워주기에 매우 귀한 것입니다.
청년을 이슬에 비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호 14:5 "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셔서, 향내 나는 백합꽃 같이 아름답게 만개하고, 우람하고 곧게 뻗어 올라가는 백향목 같이 번성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청년들을 새벽이슬에 비유한 것은 이슬 같이 깨끗하고 거룩하며 신선하고 영롱한 청년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주의 거룩한 백성들은 새벽이슬처럼 활력이 넘치는 백성입니다.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서 일하는 자들이 아니라 즐겁게 자원하므로 복음의 꽃을 피게 하고, 교회가 성장하도록 하는 자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구속해주시고 오늘도 다스리시는 주님께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 기대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시들어진 꽃을 선물 받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시들어진 장미꽃 한 다발을 선물로 받을 때에 기뻐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들어빠진 탄식을 주님은 듣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생기 넘치는 헌신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은 새벽이슬같이 아름답고 신선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새벽이슬 같은 헌신을 기대하십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라는 말 때문에 혹시 연세 드신 분들은 “우리는 이제 한물지나갔다”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이가 많아져도 얼마든지 젊음의 생기를 가지고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나아오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세마포 흰 옷을 입고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모습을 말합니다.
거룩함은 주의 백성의 표시요. 주님의 사역자들의 힘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지 않을 때 무기력한 자들이 되고 맙니다.
이 싸움은 주께서 대신 싸우신 싸움이기에 우리는 옷에 피뭍힐 일은 없습니다.
계시록 19장 12절 이하에 보면 주께서 이미 그 싸움을 싸우시고, 선혈이 낭자한 옷을 입고 포도주 틀을 짓밟고 계시는 주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거룩한 옷을 입고 성결의 싸움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거룩한 옷, 주님 주시는 의를 사모하고 주께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그가 우리를 새롭게 해주십니다.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소원과 힘을 날마다 공급하여 주십니다.
신앙생활에 최선의 헌신을 하는 성도들을 볼 때 힘이 절로 납니다.
주를 모시고 사는 성도들이 합력할 때 놀라운 영향력을 세상에 미치게 됩니다.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우리의 헌신이 달라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천만이 넘는 기독교인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숫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정말 왕께 드리는 헌신처럼 헌신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썩어질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주님의 나라로 만드는 영광스런 일에 부름 받은 자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을 영원한 왕, 승리하신 주님께 드립시다.
그 분은 우리위해 생명을 버리시고 마지막 피를 쏟으시며 구원을 완성시키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새벽이슬의 신선함과 아름다움과 순결함을 우리의 삶 속에서 기대하십니다.
이 활기를 가진 자만이 주의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무력한 젊은이들보다는 생기 넘치는 노년의 삶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은 젊은이라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어르신 여러분, 노년이라고 힘이 없다고 결코 말하지 마십시오.
기력이 여전치 못하지만 아직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평생 이룬 것 보다 더 큰 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은 헌신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새로운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새벽이슬은 날마다 내려서 초목을 새롭게 합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백성들의 헌신도 날마다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주는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영원히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간구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넘치게 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위해서 즐거이 헌신하려는 것이 우리가 가진 시간입니까? 드리십시오.
재능입니까? 드리십시오. 물질입니까? 드리십시오.
그 승리의 영광에 동참할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 순간순간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 드려지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통해서 영원한 제사장 사역이 이 땅에 편만해 지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사함 받지 못한 사람들이 용서의 복음을 듣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새 생명을 얻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나라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사용되기를 간절히 소원합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무디어진 주를 향한 사랑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지쳐있는 모습을 가지고 때로는 서로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을 위해서 우리의 삶 전체를 쏟아 붓기를 소원합시다.
세상이 악하여지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창녀와 타락하는 세대 속에서 주의 마음에 합한 신앙공동체가 이 땅에 풍성히 회복되기를 간구합시다.
새벽이슬 같은 헌신을 드리는 자에게는 새벽별과 같이 빛나는 내일의 영광이 기다립니다.
이 한 주도 승리하시며 정말 멋있게 주를 위해서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께 헌신한다고 수없이 말해 왔지만, 실제로는 여러 조건들을 내걸며 주님과 흥정했던 나날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새벽이슬 같은 청년의 헌신으로 가장 가치 있는 일에 젊은 날을 바칠 수 있는 확신과 믿음을 주시고, 메시아의 권능을 드러내는 일에 동참케 하소서.
오늘도 주를 향한 믿음의 다짐을 하며 살기를 원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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