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 1-12절 기이히 여기며
저는 무덤를 지키는 돌문입니다.
저는 원래부터 무덤을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고향은 예수의 시체를 두었던 무덤에서 그리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저는 광야의 바람을 벗삼아 살아왔습니다. 가끔은 매서운 바람들이 찾아와 저를 괴롭게도 했지만, 저는 그들이 오는 것이 싫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늘의 해가 가리워지고 바람한점 없는 칠흑같은 때가 찾아왔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면서도 무엇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이 바로 예수라는 분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제가 어떻게 비추어졌는지 저는 누군가의 무덤을 덥어놓는 돌문이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제가 둥글게만 생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정말 그 돌무덤을 덥어 놓기에 적당한 놈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곧 사람들의 손에 옮기어져 무덤을 등에 지고 아무도 저를 옮기우지 못하도록 버티어야 했습니다. 저는 저의 등 뒤에서 시체가 썩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짝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의 등뒤에 있는 시체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그는 잠이들어있는듯한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무섭기 보다는 평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를 주시하여 보았습니다. 그는 곧 살아 움직이기라도 할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3일이 지났을까요. 아직 날이 새지도 않았는데, 하늘에서 찬란한 두 명의 천사가 나에게도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에게 오길래 저를 찾아오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저에게는 관심이 없고 평온한 얼굴의 그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를 살짝 밀치고는 곧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기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천사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그를 향하여 일제히 찬양을 부르는 것입니다. 분명 그는 스스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는 천사들의 찬양과 함께 일어난 후 무엇을 찾아가는 듯 곧 무덤을 빠져나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무덤안에는 여전히 천사들이 그의 세마포를 보며 찬양인듯...묵상인 듯... 무엇인가를 하는 듯 했습니다. 저는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3일전 해가 빛을 잃었을때와 연관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바람이 전해준 이야기로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죽었던 사람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소문으로는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죽었던 사람을 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분명 그는 나사렛 사람 예수인 듯 했습니다.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그는 나사렛 사람 예수였습니다. 자신 스스로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컫던 자. 바로 메시야 예수였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참하는 순간 여자들이 무엇인가를 들고 나의 곁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그들의 소리를 먼발자취에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라는 사람의 십자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듯 했습니다. 분명 여자들은 예수라는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고, 저를 향하여 걸어오고 있습니다. 달리 말할 필요가 없이 다시 살아난 그는 예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말로만 듣던 예수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시체의 모습이 아니라 살아나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저는 그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저는 1년전 말 못하는 미물들과도 교감을 나누었던 예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40일간의 광야 생활가운데서 그는 자연과 함께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짐승들과 교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증명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를 그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도 저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와 예수는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저 잔잔히 흐르는 서로의 교감만을 느낀 체 예수는 그의 길을 떠났고, 저는 그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의 빈무덤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여자들이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저를 보며 놀라는 것입니다. 왜 제가 옮겨져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에게 새벽에 있었던 그 놀라운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느낌만을 주고 받을 줄 알았지, 인간들과는 이야기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놀라 동굴속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없었고, 그가 입고 있던 세마포와 그 세마포를 지키기라도하는듯한 천사들뿐이었습니다. 여인들은 돌무덤속에서 또다른 의식이 벌어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없는 의식은 생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금새 겁에 질렸고, 찬라한 옷을 입은 천사들을 보자 땅에 얼굴을 대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천사들은 제가 전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살아나셨습니다. 왜 살아나신 예수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찾으십니까? 갈릴리에서 당신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보세요”
여인들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무덤을 뒤로한 채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달려가는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살아난 것을 직접보지도 못했는데, 희망이 가득한 얼굴로 천사들이 들려준 소식을 자랑하기라도 할 듯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후 한 남자가 올라왔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사나이였는데, 그는 저에게 다가와 무덤속을 업드려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여자들이 달려가는 것을 보고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예상은 빚나가고 말았습니다.
한명의 사나이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사실 실망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예수라는 분이 살아난 것을 기뻐할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그 사나이는 예수가 살았다는 것에 이상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예수의 시체가 없어진 것에 대하여 기이히 여기는 듯 했습니다. 물론 직접보지는 못하여서 그런다 하지만, 그러나 분명 예수의 시체가 없어졌는데도, 그 사나이는 그져 기이한 일로 여겼던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도들이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터인데, 한 사나이만을 제외하고 오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은 여자들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예수가 살아날리 없다는 것이죠!
그들은 오로지 그들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신이 역사한 현장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고요? 아니 꼭 보이는 것만 믿는다면 그것이 과연 믿음이겠습니까?
인간들은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을 줄 모릅니다. 그저 자신들의 기준에 의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판단하여 버립니다. 나중에 안 이야기입니다만, 예수의 제자들은 다시 살아나신 예수가 그들의 눈앞에 왔을 때 비로서 믿었다는군요. 그리고 한 제자는 예수를 본것만으로는 만족지 못하고, 그의 몸을 만져야만 믿을 수 있다고 고집까지 부리고요.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왜 자신들의 감각속에 느껴지는 하나님만을 진짜라고 여기는 것일까요!
그날 천사들이 다 떠난 후에 나를 찾아온 한 사나이는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래 자신의 스승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서 스승이 살아났다는 사실을 듣고도 믿지 못한단 말입니까? 저는 그의 행동을 주시해 보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믿지못하겠다는 표정을 짖고는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아마도 그의 동료들에게 가서는 여자들의 소리는 헛소리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눈에 비친 빈 무덤은 기이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가 그의 앞에 서 있다 하더라도 기이한 듯 그를 바라볼 것입니다. 예수는 기이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신 분이며, 그의 말씀대로 죽으시고,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기적을 보면서도 기이한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예수가 하나님에게 철저히 구한 너무나 당연하고도 합당한 은혜였습니다. 제가 갑자기 흥분을 한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실을 늘어놓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성서의 모든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성서의 모든 사건은 기이하기 보다는 언제나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천사들이 여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당신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그랬는데...사도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고도 그말씀이 기이한 말씀으로 생각되었나 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이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이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약속있는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같이 그저 신기한 말씀으로...또한 자신들의 기준에서 벗어난 말씀에 대하여는 믿지 못하는 불신감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그랬던가요!
왜 듣고도 믿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는 분명 살아나셨고,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는데, 아직도 눈과 귀가 열려지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가 어디에 있냐고... 그리고 2000년전에 죽은 예수는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셔서 인간들의 삶속에 스며드심을....
'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창세기 39장 1 ~ 6절 요셉과 같은 삶 (0) | 2022.12.02 |
|---|---|
| 여호수아 4장 19 ~ 24절 인생의 기념비 (0) | 2022.12.02 |
| 히브리서 12장 14 ~17 거룩한 삶과 속된 삶 (0) | 2022.12.02 |
| 창세기 22장 1 ~ 4절 믿음의 시험 (0) | 2022.12.02 |
| 요나서 4장 1 ~ 11절 요나의 불평과 하나님의 자비 (0) | 2022.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