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4장 19-24절 인생의 기념비
이 세상에는 수많은 기념물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기념물들을 보면서 그와 관련된 과거의 사실들을 추억합니다. 어떤 일들은 그 기념물들을 통해 옛 사람들의 기상과 지혜를 배우기도 합니다.
로마제국의 위엄과 영화를 간직하고 있는 개선문과 영국의 넬슨 제독이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해군을 물리친 해전 기념비, 그 외에도 세계 도처에는 역사적 사실과 교훈을 후대에 전달하는 기념물들이 숱하게 널려 있습니다.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이 기념물들을 찾아 그 시대, 그 곳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으며 교훈을 얻는 모습을 종종 볼수 있는 현상입니다.
본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요단강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행동만으로 요단강의 거친 물살을 멈추게 했던 기적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비를 세운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념비를 세운 여호수아는 기념비의 의미를 24절에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함이라” 설명합니다.
실로 이 기념비는 흔하디 흔한 열 두개의 돌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당신의 백성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만방에 만대에 증거 하는 귀한 자료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삶의 여정 가운데 이런 기념비를 가지고 게십니까?
정녕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분과 함께 하신 그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삶의 기념비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에 세운 기념비는 애굽에서의 430년 간의 노예생활과 또한 40년 간 광야 생활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입니다.
애굽에서 출애급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체험했던 그 경험들은 그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또한 광야 40년 간 보았고 체험했던 그 놀라운 이적들과 그 이적들이 하나님의 백성된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베풀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얼마나 그들은 감격스러웠겠습니까?
물론 길갈에 기념비를 세운 이스라엘에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출애굽의 2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부모를 통해 들었던 출애굽 당시의 이야기들은 자신에게는 너무나 생생한 구원의 체험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기적으로 인해 자신들의 부모들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그 뒤를 이어 자신들이 가나안 정복하는 은총을 맛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길갈에 기념비를 세워 자신들과 자기 부모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고자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이처럼 바라보고 기억할 때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게 하고 벅찬 감격을 느끼게 할만한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어쩌다 그때를 생각만 해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는 그 기억을 가지고 계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기념비로 삼아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 단단히 세워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 기념비는 바쁜 삶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신앙의 위치를 일러주며 주께서 명하신 그 길을 걷기 위한 이정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몇몇 기념물들을 천지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길갈의 기념비, 삼상 7;12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일깨워주는 에벤에셀의 기념비, 왕상 19:30-31절의 850대 1의 엄청난 싸움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엘리야의 제단입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어느 누구도 행치 못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더 큰 일을 가르쳐 주는 기념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입니다.
로마인들이 파렴치범이나 반역자와 같은 중죄인에게 사용했던 치욕적인 사형 도구가 바로 십자가형입니다. 이 십자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치욕과 고통과 슬픔을 맛보았던 기억조차하기 싫은 사형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조차 하기 싫어하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또한 부활하심으로 그 치욕스런 십자가의 의미를 백퍼센트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단이 가진 모든 권세를 일거에 쳐부순 능력의 기념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악과 어둠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죽음 대신 생명을 주는 기념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형벌대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위와 그에 따르는 모든 권한과 기쁨과 평안을 회복시킨 능력의 기념비로 십자가를 만드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 보여준 이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곳곳에 이 십자가의 의미가 드러나야 하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증거가 되는 기념비를 세워야 합니다.
십자가 신앙을 통해 롬 12:21 말씀처럼 선으로 악을 이기고, 고전 13:4-5절의 사랑의 능력으로 미움과 투기와 교만과 무례함을 이기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능력의 기념비를 날마다 세워 나가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념비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실한 삶으로 믿는 성도들이 보여줄 수 있는 증거가 되게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과거의 역사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다가 죽어간 신앙의 선배들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기념물들을 남기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사는 동안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랑을 전혀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진면목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키고자 애섰던 그 신앙이 얼마나 귀한 것이며 부귀 영화와 육적인 평안을 모두 버리면서 끝내 간직하였던 주께 대한 열심히 얼마나 빛나는 기념비인지를 우리는 뚜렷이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과 같이 우리도 짧은 인생 가운데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기념비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워야, 우리의 손길과 몸을 통해 베풀어진 사랑을 기억하는 기념비를 세우는 자가 되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능력과 날마다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에 감사하는 기념비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기념비들이 하나씩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우리는 한층 더 넘치는 기쁨으로 주님을 맞을 그 날을 고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렸던 것처럼 날마다 주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
우리의 삶 속에서 영원히 개입하셔서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 감사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기념비를 세워 영광돌리며 자신의 신앙을 다시 재무장한 것과 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기념비들이 늘어나게 하여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시며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기념비들이 신앙인으로써 올바른 길을 걷게 하여 주시고 새로운 이정표로써 모든이들에게 본이 되어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편 110편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 (0) | 2022.12.02 |
|---|---|
| 창세기 39장 1 ~ 6절 요셉과 같은 삶 (0) | 2022.12.02 |
| 누가복음 24장 1 ~ 12절 기이히 여기며 (0) | 2022.12.02 |
| 히브리서 12장 14 ~17 거룩한 삶과 속된 삶 (0) | 2022.12.02 |
| 창세기 22장 1 ~ 4절 믿음의 시험 (0) | 2022.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