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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창세기 22장 1 ~ 4절 믿음의 시험

by 주님과 함께하는 삶 202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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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2장 1-4절 믿음의 시험
동부교회 첫 부임 설교입니다 주일저녁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한번씩은 시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험을 통하여 신앙적으로 크게 성숙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오히려 믿기 전보다 더 형편없이 나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같이 시험을 받으면서 왜 이처럼 다른 결과를 낳게 될까요?
어떻게 하면 시험을 통하여 이전보다 형편이 나빠지지 아니하고 신앙의 성숙을 가져올 수 있을 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의 모습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절에 나오는 ‘그 일 후에’라는 말은 창세기 22장에는 1절과 20절에 ‘이 일 후에’로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 원문성경에 보면 ‘그리고 이러한 일들 후에’로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이러한 일들’은 1절은 창세기 21장의 이삭의 탄생과 이스마엘 문제의 해결 그리고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의 좋은 관계로 외부적 분쟁이 해결되어 가정적으로 행복함을 말합니다. 또한 20절의 경우는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해 겪은 아브라함 개인과 가정의 위기 및 그후에 주어진 축복을 가리킵니다.
‘그 일 후에’라는 말에는 아브라함이 노년에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얻은 이삭으로 기쁨을 얻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여 이삭이 몇 살이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3일 길을 여행한 후에도 지치지 않고 번제용 나무를 지고 산에 오를 정도로(6절) 성숙해질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십니다(1절).”
이때까지 그야말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전부였습니다. 그가 갈대아를 떠난 것, 그가 가나안에서 성공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만이 전부가 아닌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아무 것도 없었기에 하나님이 전부가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에게 아들이 있기에 하나님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본문의 ‘시험한다’는 말은 ‘증명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록 아들을 주셨지만 하나님이 전부라는 믿음의 증명을 받고자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브라함은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대답은 무슨 일이든지 시키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결의에 찬 응답 이였습니다. 이사야 6장 8절에 이사야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는 장면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 대답한 것도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이 대답 후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인간의 한계를 보이게 됩니다. 결의에 찬 대답은 아브라함의 개인적인 자신감에 넘쳐 외친 메아리로 끝날 처지에 몰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시험 대상에 오른 아브라함을 더욱 절박하게 상황으로 몰고 가십니다. 시험의 수단으로 사용될 이삭에 관한 아브라함이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강하게 불러일으킬 만한 표현을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받쳐라.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이 표현은 3중으로 강조된 말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사람을, 그 중에서도 100세에 낳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을, 이스마엘이 떠난 후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혈통이며 25년을 기다려 얻은 ‘언약의 아들’이란 점을 강조한 말입니다. 이삭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정을 최고도로 불러일으켜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명령에 순종케 하려는 하나님의 연단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브엘세바에서 사흘길이나 떨어져 있는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라 명령하십니다. 번제로 드리라는 것은 이삭을 단순한 상징적, 영적 차원의 요구가 아닙니다.
실제로 이삭의 배를 가르고 피를 내어 제물로 바치라는 엄중한 요구입니다. 이 제사법은 당시 추악한 우상인 몰록신을 경배 시에 자행되었던 인신 제사와 같은 방법입니다.
이 번제 제사는 창 9장 4-6절의 ‘피 흘리는 것을 싫어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던’ 말씀과는 반대되는 것이며 창17장5-6절의 거듭된 약속과 맹세 속에 겨우 태어난 유일한 약속의 씨 이삭을 다시 거두어 가려 하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약속과는 거리가 있는 명령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의 모든 것을 버리라 명하셨던 모습과는 반대로 아브라함이 이해 할 수 없는 이방신에게 제물을 받치던 방법으로 이삭을 제물로 받치라 명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날 신앙문제를 이성으로 해결하려는 현대의 신앙인들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도전이요 시험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 앞에 우리의 상식에 호소하며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해결방법은 눅5장 1-11절의 시몬 베드로의 모습에서 찾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노력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방법을 가지고 해결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해결방법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아브라함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의 안장을 지우고”(3절)
이 말씀에서 아브라함이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기쁜 마음으로 명령에 순종했다고는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밤잠을 설치며 심한 고통과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삭을 잃는 것에 대한 슬픔, 하나님의 언약이 이삭의 죽음으로 파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브라함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간밤의 모든 고뇌에도 불구하고 날이 밝자 하나님의 명령을 즉각 실천에 옮겼습니다. 자신이 나아갈 길은 순종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을 때 아브라함은 한 줄기의 빛이 비추는 것을 발견합니다.
로마서 4장 21절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고 믿었기에” 말씀입니다. 그는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였습니다.
이 순종은 열악하고 부정적인 환경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 순종은 그 명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만이 행할 수 있는 신앙적 행위입니다.
마 26장 39절의 주님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있는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인간의 모든 것을 뒤로하며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은 우리를 골탕먹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며 나아가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실 때는 그만한 이유기 있습니다. 그것은 시험을 통해서 당신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눈에 도저히 해결책이 없을 때 그 문제를 하나님께 의뢰하면 하나님이 순식간에 해결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는 기회로 만듭시다.

사실상 우리의 생활은 시험의 연속입니다. 이 시험들을 디딤돌로 삼을 때 우리 생활은 풍성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 앞에서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서십시오.
시험이란 괴물 앞에서 주춤거리지 말고 하나님의 펴신 팔 아래로 여러분을 맡기십시오.
그래서 시험이라는 인생의 디딤돌에서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합시다.

약 1장 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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