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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사무엘상 3장 1 ~ 10절

by 주님과 함께하는 삶 202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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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적 관점

 본문은 백성들이 불순종함으로 적들에게 희생당할  구원하는 판관들의 비상시적인 역할에 점점 지쳐간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가와 이스라엘의 왕정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들처럼 왕을 고대하게 된다. 시작부터  인간의 손에 집중된 권력과 하나님의 강한 팔의 대결구도는 어려움을 수반했다. 권좌에 앉아있는 타락가능한 존재로서의 왕은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따를  있을까?

그래서  이야기는"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다"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층이 부패했다고 하는 부정적인 언급으로 시작한다. 제물의 귀한 기름을 갈취하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같이 회막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러 왔던 연약한 여인들과 동침하는  엘리의 아들들은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제사장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런 행위들은 이스라엘의 윤리적 범주에서 아주 악한 죄였다. 심판이 오고있다.

그러나 누가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할 것인가? 누가 감히 맞서서 하나님의 선포를 말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권력자들과 국가의 문제에 개입시킬 것인가?  "매우 작은" 이야기 속에서 뒤이어 출현하는 왕들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충성스런 예언자의 역할(20) 담당할 새로운 일꾼이 등장한다. 뒤이어 오는 아이를 "여러 왕과 왕국 위에"(1:10) 세우고 훗날 "이스라엘 중의 많은 사람을  망하게 하고 흥하게 하는(2:34)" 운명을  사람에게 부여하는 "하나님의 믿음직한 예언자" 새로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많은 것이 함축된 작은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다음의 이야기를 면밀히 살피보자.

첫째  일꾼의 탄생은 서로 함께 이뤄낸 일이다. 비록 엘리가 그의 혈육에서 믿음을 물려주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가 돌봐야 하는 젊은 사무엘에게 영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엘리의 눈은 나빠져갔지만 그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에 관한 그의 경험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일꾼의 탄생을 위하여 사무엘의 귀의 예민함과 늙은 제사장의 마음과 생각의 지혜 모두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약해져가는 제사장의 권위와 하나님의 심판의 결실을 맺을  젊은 후계자의 복종은 둘다 필요하다.  예언이 엘리와 그의  아들의 파멸을 가져올지언정  노제사장은 사무엘의 말을 예언자의 신뢰할만한 말씀으로 받으며 " 분은 주님이시다.  분은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3:18)."라고 한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둘째로 이것은 말로만 듣는 "환상"이다. 뒤따르는 왕들은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대한 궁전들을 건설하고 마음대로 움직일  있는 거대한 군대를 가지게 될지 모르지만, 예언자들의 도구는 오로지  가지 '귀와 '이다.  이야기는 밤에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는 경이로운 목소리로 시작한다.  부르심은 청자로 하여금 "말씀하십시오 주인님. 주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응답하도록 한다. 이런 응답은 결국 새로운 말하기를 낳으며, 인간의 입을 통하여 담대하게 전달된다. "이후 사무엘은 그에게 모두 말하고 아무 것도 숨기지 않았다(3:18)." "빛이 있으라." 말씀으로 창세기가 시작하듯 삼상 3장도 말에 의해 진행된다. 다만 이번에는 인간이  말씀에 응답하여 입을 열고 말해야한다. 결국 "매우 사소한 이야기"라고 보기 어렵다.

세번째로 이번 주현절   번째 일요일에 중요하게 언급되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세상에 개입하는  인간의 말하기와 듣기는 중요한 도구라는 것이다. 우리는 앞서 레위기 1:1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회막에서 말씀하시길 이스라엘에게 말하라." 기록된  모세에게 개인적으로 일어난 부분을 보았다. 우리는 신약에서 장차 오실 새로운 모세로서  "너희는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5:21-22)." 기록된 부분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기에는 말씀을 듣는 행위는 사회가 함께 듣고 함께 말하는 공동의 사건이 된다. 사무엘 상하에서 사울과 다윗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갈  장면 속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들리는 것은 인간의  뿐일지 모르지만, 인간의 행동에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을 배울 것이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에 순응하든지 그렇지않든지 하나님은 진정 인간의 말과 행동에 밀접히 관여하신다.

그래서 심판에 관한 사무엘의 말은 오늘날의 교회가  이야기를 지나치게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경고의 내용도 포함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빛은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들의  속에 계속해서 역사하려 하신다.  말씀은 진정 "끌어올리고 내리고, 파괴하고 굴복시키며, 세우고 심는(1:10)"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말씀은 듣고 말하는 용기를 받은 노제사장과 젊은 제자  모두의 대화를 통해 생겨났고 전파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것은 오늘날에도 (역자 : 인간의 대화와 행동 속에)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목회적 관점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하실 것인데, 그것은 우리의 귀를 멍멍하게 할 정도로 큰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일을 어린 소년을 통해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이를 통하여 우리를 전율하게 하실 것이다. 구약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것은 마리아의 자궁 안에서의 움직임이 마리아를 놀라게 한 것을 연상시키고, 요셉이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여인과 함께 이집트로 도망갈 때 놀랐던 것을 반영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귀가 멍멍했던 때는 두 살짜리 아이가 우리 집을 찾아와서 우리 고양이와 놀았을 때였다. 우리 거실의 한 복판에는 커다란 발판이 있다. 우리는 구석에 놓인 TV에서 눈을 돌려 우리 거실에 있는 서로를 향해 눈을 돌렸다. 여섯 개의 의자와 소파가 발판을 둘러싸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발판에 발을 올려놓게 되어 있었다. 그날, 특별한 저녁에, 발판 주위에 편안하게 둘러 앉아 있었고, 나와 그 아이만 고양이가 발판 밑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자기만 그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킥킥 웃으며 고양이가 발판 밑에 있다고 가리켰다. 어른들은 잠시 동안 즐거워 하다가 이내 게임에 지쳐서 자신들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 아이는 발판 덮개를 끌어당기면서 킥킥거렸다. 그 일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식사를 했고, 또 다른 것도 먹었다. 그 아이는 블록을 몇 개 쌓고는 쓰러 뜨렸다. 그러다가 그 아이는 발판으로 돌아갔는데, 고양이가 거기에 없었다. 재앙이 발생했다. 그 아이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울기 시작했고 달래주어야 했다. 그때 나는 그 고양이가 발판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고양이의 비밀을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그 아이는 발판 덮개를 들어서 킥킥 웃고, 앞뒤로 달리고, 소리 지르고, 비명을 지르기를 계속했고, 고양이를 발견한 기쁨으로 귀가 멍멍해졌다. 그것은 전염성이 있어서, 나도 덩달아 전율을 느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어쩌면 세상에 모든 것이 다 있을지도 모른다. 그 작은 고양이의 경험은 엘리와 사무엘과 하느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귀가 멍멍해지는 것을 잘 알지 못했는데, 이 일이 “귀가 멍멍해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엘리와 사무엘이 하나님을 만난 것은 나의 작은 발판 이야기와 비슷한 극적인 움직임을 가진다. 한 노인과 한 청년이 협력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을 듣는다. 그들은 처음에는 확실한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노인은 주님의 방법을 알았고 사무엘이 듣도록 인도한다. 엘리는 용서받을 가능성을-적어도 그의 슬픔이 끝날-가능성을 깨달았다. 사무엘은 “주님을 알지 못하였으나”(3:7) 훌륭한 인도자에 의하여 길을 찾았다. 이 소식은 KJV에서 “귀가 멍멍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NRSV는 “내가 이제 이스라엘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것을 듣는 사람마다 무서워서 귀가 멍멍해질 것이다(3:11)”라고 읽는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가 멍멍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느낀 때가 언제인가? 당신이 너무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발길질을 하고 싶고, 사면장을 큰 소리로 읽고, 온 몸에 전율을 느낀 마지막 순간은 언제였는가?

“전율”은 일종의 영적 침술이다. 그것은 오싹하게 하는 소식을 통해 갱신과 용서의 시간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종종 두려워서 멍멍해지는 경험 때문에 결정을 내리곤 한다. 의사에게서 우리의 암이 재발했다는 말을 듣거나, 판사가 어린 아이에게 마약을 했다고, 혹은 컴퓨터 데이터를 훔쳤다고 유죄 판결을 했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연금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온 몸이 긴장했다. 다른 차와 거의 부딪칠 뻔하고서 너무 겁이 나서 차를 정지하고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잠시 쉬어야 했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를 일으킬까 두려워하면서  온통 주의를 집중했다. 레바논에서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3차 세계 대전이라는 말이 우리 입술을 스쳤다. 그것이 가시화되는 것 같았고, 우리는 공포로 귀가 멍멍해졌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권장하는 것은 희망으로 귀가 멍멍해지는 것을 근거로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 양쪽 귀를 멍멍하게 할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나는 우리가 실제의 우리보다 더 영웅적으로 되어야만 한다는 설교가 싫어서 이렇게 말한다. 한쪽 귀를 두려움으로 멍멍하게 하자. 공포는 우리 삶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정당하다. 두려움은 영적으로 합법적이다. 많은 것이 잘못되었다. 많은 위험이 감춰져 있다. 하지만 이제 다른 귀로 들어 보라. 사무엘이 듣기를 꺼려했던 것을 들어보라: 하나님이 새로운 것을 하실 것인데, 그것은 우리의 양쪽 귀를 멍멍하게 할 것이다. 다른 귀도 약간의 훈련을 하게 하라. 그것 역시 멍멍하게 하자.

속임수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높은 신분 (noblesse)”과 “의무(oblige)”사이의 충돌을 회복시키는 세상, 모든 일이 공정하고, 당신이 잘 지내고, 여러분의 사랑이 정당하며, 칼이 예술 학교가 되고 무기가 노인들이 몸 녹이는 장소가 되는 곳을 상상해 보라.

안전한 거리에서 놀고 있는 어린 아이를 내다보는 곳, 훌륭한 대중교통이 좋은 직장으로 데려다 주는 곳, 경제 문제에 집착하지 않아도 버젓한 급여가 제공되는 매력적인 세상을 상상해 보라. 건강이 보장되고 삶이 보장되며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옳은지 당당하게 선택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가정만큼 좋은 병원과 병원만큼 좋은 호스피스를 상상해 보라. 좋은 일들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그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으라. 하나님께서는 좋은 일들을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들은 이미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다. 우리 귀를 멍멍하게 하는 방법은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다. 발판 밑을 보라. 성경으로 돌아가라. 소망으로 미래를 보라.  양쪽 귀를 열어라. 그러면 곧 그들은 멍멍해질 것이다.

  설교적 관점

 

-오늘 본문은 현대와 비슷한 양태로 시작하고 있다: 그 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우리 시대와 비슷하다. 이 구절 이후, 우리는 기적의 시대를 이미 통과했다. 더 이상 불기둥과 구름기둥 또 바다와 강물이 갈라지는 일은 없다. 이제 이어지는 이야기는 세상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왕권 투쟁등의 이야기들이다. 사실 사무엘이 인간을 왕으로 만드는 역할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독립으로 더 나아가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와 흡사하다는 사실에 오싹할 정도이다.

 -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진 것이 아니다” (3:3). 오늘날 비록 환상이 드물게 나타나더라도, 여전히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은 단지 잠자는 것처럼(seems to be sleeping) 보일 뿐이다. 사실 사무엘이 잠든 사이에도 하나님께서는 깨어있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사무엘과 같다고 볼 수있는데, 사무엘은 주님을 알지 못하였고,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3:7). 사무엘처럼 우리는  년간의 종교교육을 받은 후에 주님을 직접 알지 못한  사역을 위해 나설  있다. 그리고 사무엘처럼 우리는 잠자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신적 존재에 대해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사역으로 너무 지쳐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영혼은 너무 무뎌져서 날마다 성전에서 일하지만 결코 하나님을 듣지 못한다. 내 동료는 언젠가 “나는 은퇴해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지쳐있는지를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바로 우리의 잠이 방해를 받는다.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를 성가시게하고 심지어 우리가 그것을 분별하지 못할 때도 그렇게 하신다. 우리를 부르시고 왜 그러셨는지를 알 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쉴 수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성전에서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우리는 성전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 대신 어떻게 박물관이 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성서는 이 민망한 이야기에 여러 유대적 풍자를 가미하고 있다. 주님은 “사무엘아 사무엘아” (Sam-u-el, Sam-u-el) 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 (God has heard)라는 것이다. 이 어린 소년은 “여기 내가 있나이다” 라고 말하고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간다. 엘리는 (Eli) “나의 하나님” (my God)이라는 뜻이고 그는 사무엘을 부르지 않았다.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를 부르고(사무엘) 다시 그 소년은 그의 진정한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 엘리에게로 간다. 세 번째 주님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를 부르고 마침내 엘리는 (오랫만에 처음으로 진실로 깨어서) 그 소년에게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라고 가르친다.  

-주님께서는 "내가 이제 이스라엘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것을 듣는 사람마다 무서워서 귀까지 멍멍해질 것이다“ (3:11)라고 말씀하신다. 이 소식은 엘리에게는 좋지 않은 이 될 것인데, 그것은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반열을 더럽혔고 그래서 왕이 필요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이 다스릴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왕에게 기름을 부어야 할 것이고 사무엘은 [왕을 세우는] 킹메이커가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사무엘은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솔직하게 이 상황에서 그는 답보다는 질문이 더 많은 당황한 소년이다.  “이 때까지 사무엘은 주님을 알지 못하였고,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3:7). 그는 자신을 도와 줄 엘리를 필요로 하고 밤 중에 들린 이 음성을 알게 된다. 엘리 (풍자적인 이름, 앞 못보는 사람, 아들들을 훈육하는데 실패했던 불명예스런 제사장)는 사무엘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사람이다. 엘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앞을 보지 못했지만 도움을 주기에 충분한 것을 보았다. 그레이엄 그린 (Graham Green)의 권력과 영광 (The Power and Glory)라는 작품에 나오는 “위스키 제사장” (whiskey priest, 도덕적 결점을 갖고 있으면서 높은 수준의 종교생활 선포하는 사람)처럼 그는 여하튼 생명의 제사장이고 자신의 열악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  

-이 드라마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그의 사랑하는 스승에게 부과된 잘못을 말하는 선택본문(11-20)에서 흥미를 더하게 된다. 이 잘못은 우리들 곧 교회가 문제가 생기는 길로 가고 있는데도 바라만 보고 있었던 무능한 제사장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혹은 좀 불편하지만 우리 멘토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사무엘은 너무 혼란스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 아침이 되자  엘리가 “사무엘아” 하고 부르고 소년은 그에게로 온다. 엘리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무리 듣기 어려운 것이라도 알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듣기 힘든 것이었다. 흠이 많았던 스승에 대한 깊은 연민으로 사무엘은 모든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장 반열을 폐하실 것을 계획하신다. 훗날 우리는 댜른 대목에서 몇 가지  다른 목소리와 의미를 듣게 될 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드라마에서] 우리는 순결한 사람 사무엘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Here I am)라고 즉시 대답하여 몇 백년 후 하늘의 환상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을 예상하게 한다. 칼뱅의 표현대로  사무엘은 “주님의 사역에 대해 신속하고 성실하다.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도 엘리의 아들들처럼 악한 자들이 될 것이다. 사실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그들이 엘리에게 했던 것을 자주 말하게 될 것이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삼상 8:5). 그는 아버지로서는 실패한 이후에야 킹메이커가 될 것이다.  

-이 코믹하고 부드러우며 비극적인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삶과 유사하다. 종교지도자들이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모든 인간적인 약점이 많은 시대에, 이 이야기는 피곤해하고 또 낙담에 빠진 모든 사역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무엘인가? 우리는 엘리인가? 우리는 진정으로 확신하는가? 만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혼란한 성전에 오신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시는 분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엘리이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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