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4장 10~14절.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청주새힘교회주일오후설교 2006.05.07
인생은 항상 삶이 평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지요.
부푼 희망이 하루아침에 절망이 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이 시간도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 고난, 사업실패, 사건과 사고, 죽음과 같은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믿는 성도들도 똑같이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방황하게 되지요
홍해 앞에 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어렵게 바로의 손길로부터 자유를 얻어 기분 좋게 출애굽 하던 이들에게 상황은 바뀌어 사냥꾼에 쫓기는 동물처럼 멸망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바로가 전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좇아옵니다.
이 상황에서 원망과 후회가 없을 사람이 있을까요? 더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굳이 한군데 있다면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알다시피 홍해바다는 수영으로 건너기에는 먼 거리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수영을 다 배운 것도 아닙니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는 곧 자살행위와 같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애굽으로 잡혀 갈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바로가 애굽을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만 두겠습니까?
혹사당하지 않으면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실제로 이 상황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위기를 맞은 백성들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여호와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을 부르고 있지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외침이 아닙니다.
이들의 외침은 자기들이 처한 위험한 환경을 탓하는 외침입니다.
애굽을 떠나오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져 찾아볼 수 없고 애급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며 출애굽만 아니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을 것이라 불평합니다.
자신들을 광야로 이끌어내어 죽게 한다고 비난합니다.
심지어는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와 그이 강력한 군사력이 아닙니다.
또 건널 수 없는 출렁거리는 홍해바다도 아닙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입니다. 위기에서 불평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십니까?”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이것은 공평하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가 애굽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이런 괴로움은 없었을 것 아닙니까?”
“ 왜 고생을 사서하게 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떠합니까?
이런 불평은 안하셨나요?
상황이 변할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보다는 자신들을 위험에 빠뜨린 주변 환경과 과거를 더듬기 바쁜 모습은 아닌가요?
사람들은 모두 환난을 당하게 되면 자기의 본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공포로 구원의 소망을 찾지 못한 채 깊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잊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모세는 어떠했습니까?
모세도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감정이 있고 욕구도 가진 사람입니다.
그도 두려움과 원망이 앞섰지만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종답게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격려합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만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언가 크고 엄청난 일을 행하실 것이고 이런 시련과 역경에서 능히 구원하실 줄 의심치 않았습니다.
모세가 우리와 다른 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13절에 말합니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위기의 상황에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지켜보라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두려움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종종 직면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아는 자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원망과 불안에 떠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과 강한 손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막4장 40절에서는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광풍에 시달리며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
아무리 문제가 어렵다 할찌라도, 상황이 절망적이고 도움의 여지가 없다고 할찌라도. 두려워하거나 믿음을 잃지 말라 십니다.
내가 하려고 할 때는 모든 것이 두려움이 생기고 문제가 되어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맡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께 맡길 때 담대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생길 때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에 참된 평안을 주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은 어떤 문제에 부딪히든지 간에 하나님의 메시지는 한결같습니다.
파산을 당해도, 질병 속에도, 실직의 아픔에도, 갈등으로 번민에 휩싸여도, 재정적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도.........
그러나 문제는 두려움을 주는 상황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강한 군대의 공격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런 반응은 무엇인가요?
그것으로부터 피해서 숨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외칩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가만히 서서 주님의 구원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포기하거나 달아나지 말고 고요히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길을 기다리는 성도가 됩시다.
문제가 직면했을 때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일어나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입니다.
15절에 “앞으로 나가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힘을 내어 앞으로 나갈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견고하게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순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불신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을 던질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를 발하셨는데 오늘날 우리들을 향해서는 어떠실까요?
단순히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넘겨버릴 사안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불신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진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평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을 평가하시는 하나님의 평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에 의한 삶을 사는 자만이 이 시대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사고에 갇혀 내 맘대로 평가하고 내 기준에 맞춰 하나님을 짜깁기하는 삶이 되면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변함없으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따라가는 믿음의 종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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