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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사도행전 27장 21 ~ 34절 폭풍속에 바울의 리더쉽

by 주님과 함께하는 삶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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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7:21-34 폭풍속에 바울의 리더쉽

2007.8.19 새힘교회설교문

 

소망은 영혼의 닻 입니다.

닻은 배를 안전하게 붙잡아 주는 역할로, 만약 닻이 없다면 배는 바람과 물결에 떠밀려 이리저리 흩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죠. 영혼의 중심 잡이가 없기에 시련 앞에, 이리저리 휩쓸려 부서지고 말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에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소망을 나타내는 원어의 뜻은 노끈을 의미합니다.

노끈은 다른 두 개의 줄을 서로 꼬아 하나로 엮어놓은 줄입니다.

즉 소망이란 떨어져 있는 두 개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으로 관계 속에서 이뤄지지요.

자신이 스스로 소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상대가 있어야 비로소 소망은 시작됩니다.

 

본문 말씀에 상황은 바울이 탄 로마행 배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광풍이 일어 더 이상 항해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폭풍우로 인해 배는 이리저리 밀리고 배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어떤 대책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영혼의 닻을 로마 군대에 둔 백부장 율리오도, 재물에 둔 선장이나 상인들도 생과 사를 가르는 폭풍우 속에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닻을 하나님께 내린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광풍을 만나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영적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혼의 닻을 내릴 수 있도록 세 가지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첫째, 폭풍우 속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21절에서 26절까지 말씀입니다.

바울은 환난을 예견하고 그레데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잘못을 밝혀내어 비판하고 판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들의 실수를 이용해 조정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을 이용하지 않으며 도리어 살립니다.

바울이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는 사실을 언제 알았을까요?

그레데를 떠나기 전에 알았을까요?

그렇다면 바울은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제 밤중까지 두려워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는 믿음으로 자신을 붙잡았을 것입니다.

 

 햇빛이 사라지고 몇 날이 지나도록 캄캄한 밤만 지속되고 별빛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는 광풍은 이리저리 배를 끌고 다닙니다.

바울은 연일 계속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혼돈에 빠져듭니다.

 ‘여기서 죽는다면 나의 삶은 무엇인가, 로마로 보내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낳습니다.

자꾸만 일이 잘못 되어 갑니다. 굳게 잡았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실까’,

 ‘이러다가 정말 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에 목표가 사라질 때, 절망과 의심이 폭풍처럼 휩쓸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약속의 아들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아이가 태어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고 끝내 아내 사라의 경수가 끊어지고 자신의 기력이 다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들을 낳았기에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결과는 고통이었고 저주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한 소망 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폭풍우 속에서 여러 날 동안 굶으며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침묵하셨습니다.

이 상황에서 바울은 두려움과 혼돈에 빠져 고통당합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셔서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행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행하십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엄청난 상황에서 하나님 구원의 약속을 듣고 밤을 지새웠다는 것입니다.

길게 잡아 24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절망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곧바로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 줍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침묵하면서 하루를 보낸 후에 말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성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수많은 고통, 아픔, 눈물을 겪었으며, 그때마다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어려움이 닥치자, 바울은 의심하고 절망하며 하나님을 향해 두려워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잠시나마 하나님을 원망하고 잊었다는 사실을.......

주님은 우리를 중보하시며 절망적인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이세벨의 칼날을 피해 도망해 있던 엘리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를 위해 로뎀나무와 호렙산을 주시고 쉬게 하셨습니다.

 

바울도 자신의 연약함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울을 안아주시고 더 깊은 곳에 영혼의 닻을 내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오직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았고, 도우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로마로 향하는 헌신을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려워하던 바울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머물며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사명이 영혼 가득히 차오를 때 비로소 확신에 찬 소리로 사람들에게 나타나 전했습니다.

 

뿌리 없는 말은 공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은 영혼을 살리고 사람을 축복하는 생명이 됩니다.

설익은 과일은 사람들의 입에서 내뱉어지지만, 잘 익은 과일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지혜였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 서기 전에 항상 하나님 앞에 충분히 머무는 법을 배웠습니다.

인생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옳은 길은 있습니다.

 

속도와 능력이 우리의 삶을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의미와 목적이 있다면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 ,어려울 때 함께 하는 것입니다.

27~3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습니다. 모세의 사명은 느보 산까지였습니다.

그는 청년처럼 건강하고 눈에 총기가 넘쳤지만, 사명을 완수했기에 그곳까지만 살았습니다.

사명 받은 만큼 사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배가 육지에 가까워지자 사공들은 바다 수심을 재어본 후 거루를 몰래 내리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바울이 재빠르게 백부장 율리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때 백부장 율리오와 군사들은 거룻배를 묶고 있던 줄을 끊어버리고 사공들이 배에서 도망 가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분명하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시도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실패할 특권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자의 능력이 적음을 책망하신 게 아닙니다.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인생의 비극은 삶을 시작하려고 너무 오래 기다리는 데 있습니다.

자존심이 용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교만하다 못해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울은 사명 앞에서 겸손했습니다.

사명 완수를 위해 백부장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로 인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백부장 율리오와 군사들이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죄수인 바울의 말을 믿었고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사공들이 자신들만 살기 위해 도망하려고 했던 생명의 마지막 보루였던 거룻배의 줄을 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쳐오면 도망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겐 되돌아 갈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도망갈 길을 준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홍해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여리고 성도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찾는 자에게 길을 열어주십니다.

 

셋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먹고 힘내는 것’입니다.

33, 34절 말씀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쳐 생명을 앗아갈 것 같은 상황에서 바울은 태연하게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소망이 이뤄질 것을 알기에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는 일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리더가 되기 전에 먼저 위로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어려움 중에 태어납니다.

자신을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봅니다.

이제 그들은 폭풍우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수동적인 자세로 사태를 관망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인 자세로 사태를 적극 헤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튿날 그들은 육지를 발견하고 마침내 희망의 닻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실험실에 연구하던 중 큰 화재가 발생해 200만 달러 이상 되는 각종 실험 도구들이 전소되고 생애를 바쳐 기록한 실험 일지들이 불타고 말았습니다.

실망하고 자포자기할 상황에서도 다음날 아침, 에디슨은 자신의 꿈과 희망이 잿더미로 변한 실험실을 걸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앙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군. 내 모든 실수를 한꺼번에 다 가져가 버렸으니 말이야.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시니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는 다시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는 늦은 때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언제 역경의 비바람이 불어 닥칠지 모릅니다.

고난이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겨내려 하는 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본성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에 할 수 있고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깊은 밤 고통 중에 찾아오셔서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너는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너와 함께 한 사람들은 너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신 하나님,

사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용감하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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