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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여호수아 6장 1 ~ 7절 내 손에 있는 관문

by 주님과 함께하는 삶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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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6장 1~7절 “내 손에 있는(순종으로 통과하는) 관문”
2005. 6. 12 주일오후 청주 새힘교회 설교문

2002년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월드컵 축구,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월드컵 무대에서 나가 뛰기를 원합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예선전에서 승리하여 진출권을 획득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지역 2차전을 치루며 땀을 흘렸고 지난 토요일 새벽 통쾌하게 승리함으로 독일월드컵 6회 연속진출이라는 과업을 이루었습니다.
신앙에도 이와 같은 관문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주님 앞에 설려면 이 신앙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관문을 통과하는 자만이 천국의 시민권이 주어지며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천국의 시민권을 얻기 위한 관문은 무엇일까요?

본문은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치룬 전쟁 기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장악해야만 가나안땅 중심부에 들어갈 수 있고, 가나안땅 남북을 차단으로 여러 족속들의 연합전선을 막을 수 있기에 필히 거쳐야 하는 관문입니다.

당시 여리고성은 예루살렘에서 35km 떨어진 32㎢의 당시 중간규모의 도시이지만,
군사와 교통의 요충지이며, 종려나무와 발삼나무가 많이 있는 오아시스 지역으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 군사적 거점의 성이었습니다.

이런 완벽한 여리고성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들이지 않기 위해 성문을 굳게 닫아 버렸습니다.
이들은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전부를 들었습니다.
홍해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무사히 건넜고, 요단 동편 아모리 족속들이 전멸했고,
마지막 방어선으로 믿었던 요단강마저 마른땅과 같이 건너 그들에게 오고 있음을 알았기에 두려워서 성문을 굳게 닫고 철통같은 수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완벽한 성을 의지하고 성문을 굳게 닫고 버티고자 합니다.
이렇게 닫힌 여리고 성을 침략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랜 시간 포위하고 있어 성안에 있는 모든 양식이 다 떨어져 스스로가 문을 열고 나오기만을 기다려 공격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체하다 보면 주변 다른 성읍에 있는 가나안족속들이 연합하여 반격해 올수 있기에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전략입니다.
이런 사정을 익히 아는 여리고성 사람들은 성문을 굳게 닫았다고 1절에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여리고성을 함락시켜야 하는 중요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까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여리고성과 같은 문제들이 우리를 가로 막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뒤로 갈수도 없고 앞으로 갈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성도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여리고성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하지 못하게 닫아두는 것만이 그들이 살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들이 살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통과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 갈 때만이 죽음의 땅이 생명의 땅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이 들어오셔야 생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들어오지 못하는 닫힌 마음에는 주님도 들어오시지 못합니다.

나만이 살고자 하는 생각 과연 나 혼자 살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생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인 것 같지만 그러나 왜 모르십니까?
굳게 닫힌 성문은 죽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내가 예배당에 앉아 있다고 마음 문이 열려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몸은 예배당에 있건만 나만을 위한 신앙은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닫힌 성입니다.
열려 있는 성문을 통해 많은 사람의 왕래가 있어야 그 성에서는 활력을 갖게 됩니다.
주님을 모신 마음은 열린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마음입니다.
나만의 여리고성을 만들지 맙시다.
굳게 닫힌 성문을 끝까지 고집 필 때 주님은 외면하시고 지나쳐 가시게 됩니다.
그 결과 성 안에 있는 사람만이 죽음이 찾아옵니다.
마 7:21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여리고성이 강한 성벽이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너질 운명에 있기에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가나안의 첫 관문인 여리고 성의 정복을 위한 계획을 세워놓으셨습니다.
그들이 성문을 닫고 어떠한 조치를 했다한들 이미 작전을 시행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며 역사하시는 전쟁이기에 인간의 계획과 수단과 방법은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와 순종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시기 전에 2절에 보면 “보라” 모두 주목하여 바라보라십니다.
“네 손에 붙였다”이는 이미 준 상태로 예전에 끝났다는 말씀입니다.
이 여리고성은 너의 것이니 믿음만 가지고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따르는 온전한 순종을 통하여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로 죄와 육신의 장애물들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 앞에 보이는 것은 그렇게만 보이는 허상일 뿐입니다.
죄와 육신의 장애물이 우리의 앞을 막는다고 두려워하거나 놀랄 필요도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승리를 확신하고 나가서 여리고성을 내 것으로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들은 세상에 속한 활이나 총이나 무기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대신 싸워 주십니다. 그저 지켜보고 명하신 말씀에 행하기만 하면 되지요.
인생의 방향키를 잡고 계시는 주님을 따라 갑시다.
주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권세를 네 손에 붙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한 태산 같은 문제라도 주님께서는 모두 ‘네 손에 붙이셨다“ 말씀하십니다.

당시 여리고성은 주전 1300년경 군사작전으로 정복하기가 불가능한 지형조건에 세워졌습니다.
성밖에서 보면 큰 바위와 갖가지 장애물이 있는 35°의 가파른 경사지에 세워졌고 성벽은 2중으로 안벽은 4~5m, 바깥벽이 2m의 튼튼한 돌을 깎아서 만든 성벽이며,
높이는 7.5m의 높은 성벽으로 요소요소에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설치된 망루가 있기에 섣불리 공격을 하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성이었습니다.

그런 성을 3~7절에 여리고성을 공략하는 전술을 하나님께서는 제시하십니다.
‘매일 한번씩 성 주위를 돌며 제7일에는 일곱 번 돌아라’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완벽한 요새를 무기도 없이 돌아라
굳게 닫힌 여리고성을 정복하기 위해 ‘무기를 더 확충하라’, ‘성벽을 부수기 위해 폭약을 설치하라’, ‘참호를 파라’, ‘북한처럼 땅굴을 뚫어라’도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방법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어린이가 생각해도 우매하고 어리석은 전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언약궤와 함께, 그것을 중심으로 성을 돌라고 명하십니다.

성 주위를 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무런 무기도 없이 성 만 돌고 있는 그들을 여리고성 사람들은 보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습니다.
하나님이 바보인가요?
하나님이 잠깐 여리고성에 대한 정보를 잊고서 내리신 명령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방법과는 다릅니다.

고전1:25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이들은 이 전쟁을 통해 하나님께서 순종하는지를 시험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무조건적인 순종을 했습니다.
자기들의 주장보다는 여호수아를 따라 하나님의 명령에 묵묵히, 그리고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인간의 방법과 전술보다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따를 때 확실한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신 심령은 여리고성과 같은 난관에 부딪힐지라도 능히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런 무조건적인 순종이 있었기에 정복할 수 없다던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우리의 상식과 이해 범위를 넘어섭니다.
그래서 쉽게 순종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말씀대로 순종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가능한 일이 직면해 있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가겠습니까?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성문만 닫으면 영원히 생명의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러나 굳게 닫힌 성 안의 사람에게는 영원한 안식을 주지 못했습니다.
영원한 안식처는 열린 마음을 소유한 자에게만 주워집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마음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교회생활 하다보면 때론 내 생각과 판단에 잘못된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불평불만하지 맙시다.
우리는 이럴 때 죽음까지 마다치 않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때론 내가 손해 보면 어떻습니까?
내가 많은 사람 앞에 창피를 당하면 어떻습니까?
주님을 생각하며 걸으신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걷는 것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영원한 반석이시며 목자이신 주님의 마음을 소유합시다.
삼상15:22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말씀합니다.
순종할 때 불가능을 가능케 되는 환경으로 바꿔 주십니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가나안 복지에 인도하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처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믿음으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는 삶을 소유합시다.
바울은 자신을 내세울 수도 있었지만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승리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을 포기하는 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관문 앞에 서 있어도 안 됩니다.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품에 안기는 날까지 나를 쳐서 복종시키며 자족하는 겸손의 신앙생활이 되도록 기도하고 따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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