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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요한복음 5장 1 ~ 18절 베데스다의 또 다른 감사

by 주님과 함께하는 삶 2022.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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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숲교회 2011.12.11일 설교문

지난 한 주 작은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며 주님의 빛을 비추셨는지요?

예수님처럼 내게 주어진 이익을 조금씩 포기하며 살아온 한 주이셨나요?

요5:1-18 베데스다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웃을 만나시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베데스다는 간헐천으로 때때로 물이 솟아올랐고, 그 물의 성분은 철분과 탄소 등 치료의 성분이 들어있어 병을 치료하는 효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데스다는

가고 싶지 않은 곳, 피하고 싶은 곳, 할 수만 있으면 멀리하고 싶은 곳입니다.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누워있는 곳이 베데스다입니다.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썩어 냄새를 풍기는 곳,

온갖 병자들의 각종 병균이 소독 되지 않은 채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곳,

중환자를 위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인생의 치열한 격전장이 베데스다입니다.

이런 베데스다를 찾으신 예수님은 또 다른 감사였습니다.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이 썩어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을 때에도,

버림받고 소외되어 혼자서 죽어가는 때라도 주님께서는 찾아 일으키시고,

세상 앞에 떳떳하게 세워 주시겠다는 희망과 믿음과 사랑을,

그 곳 베데스다에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병자들이 그 곳에 있었던 이유는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동할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낫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것은 병자의 신념이요 자신들의 병을 낫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에서 38년 된 병자를 만나셨습니다. 아니 손수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러나 병자의 대답은 엉뚱합니다.

예수님께 치료를 부탁하기는커녕 물이 동하면 자신을 제일 먼저 물이 넣어달라는 것입니다.

충분히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지요.

그는 이미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며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에서 오직 물이 동할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그곳에 넣어줄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말을 걸어 준 예수님께 자신이 알고 있는 오직 한 방법을 말합니다.

이 본문을 혹 알레고리 해석을 하기도 하는데 ‘병자는 이스라엘의 38년 광야 방랑을 그리고 다섯 행각은 율법의 다섯 개를 의미한다고 하고,

또 다른 것은 물은 율법이요, 병자의 무능함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스스로 물에 들어가지 못함은 율법에 대해서 인간을 그것을 이룰 수 없기에 유일한 길임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미에서 바라보는 것이 잘못됩니다.

이 귀절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고통을 받으며 힘들었을까?"를 짐작케 합니다.

예수님은 병자들 중 가장 오래 된 질병 중에 있는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다리가 온전하거나 비교적 가벼운 증세의 환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스스로 거동하여 연못에 들어갈 수 없는 중증 환자요, 그를 연못에 넣어줄 친구나 가족조차 없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자입니다.

그렇다고 물에 들어가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이 사람에게는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서 고침 받는다는 것은 그림의 떡입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절망적으로 38년이나 마음만 졸이며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데스다가 아니고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던 그 사람이 오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병자를 치료하십니다.

8절에 “일어나라” 명하셨고 38년 된 병자는 자리를 들고 일어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왜 수많은 병자 중에서 믿음이 없는 사람을 택해서 치료하셨을까요?

거기에 대한 답은 21절“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는 자에게 영적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병자가 고침 받을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고침 받고서도 예수님을 믿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14절에보면 도리어 현재도 계속 죄를 짓고 있기에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를 찾으신 때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성전을 찾아오는 유대인의 명절이요, 안식일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날이며, 예배 외에 어떠한 일도 허용되지 않는 날입니다.

예배드리는 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가시기 전에 찾아가셔야 할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모두가 피하는 불결한 곳, 냄새나는 곳, 아픈 병자와 죄인이 가득하여서

잘못 접촉하면 예배드릴 자격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그런 형편없는 곳입니다.

예배드리는 날.

예수님께서는 예배드리러 가기 전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난 38년 동안 도와주는 사람 없어 치료 받지 못하고 병들어 누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죄인입니다.

예배시간 전에 만나봐야 예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사람입니다.

예배드리는 날.

예수님은 하셔야할 일이 있었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은 안식일에,법을 어기면서 까지도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38년 동안 버림받고 의지할 곳 없었던 더러운 죄인을 돌보고 치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분이시기에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날 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멀리하였던 불쌍한 여자를 예수님께서 만나서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물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예배드리는 날.예수님은 꼭 하셔야 할 말이 있었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때론 주님께서는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시며

영혼의 질병을 낳기를 소망하는 우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어느 날, 테레사수녀는 한 노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곳은 집이라기보다 움막이라고해야 좋을 형편없는 곳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고, 온통 먼지투성이에다 이불이나 옷가지들은 몇 년 전에 빨았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그런 헛간 같은 방에서 노인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테레사수녀가 노인에게 말했다.

"제가 방을 치워 드리죠." 노인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테레사수녀는 당장 일을 시작했다. 바닥을 쓸어내고, 먼지를 털어냈다. 옷가지는 빨아 널고, 더러운 곳은 모두 소독합니다.

그렇게 청소를 하다 테레사는 구석에서 먼지에 뒤덮인 낡은 조그만 등을 하나 발견했다.

"이 등은 뭐죠?" "손님이 오면 켜는 등이라오."

테레사는 등을 닦으면서 노인에게 물었다. "별로 켤 일이 없는 모양이죠?"

"한 번도 켜지 않았소. 누가 죽어 가는 늙은이를 만나러 오겠소."

노인은 가족도,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그렇게 쓸쓸히 살아왔던 것이다.

노인은 먹을 것 보다 사람이 더 그리웠습니다. 이윽고 테레사가 말했다.

'제가 자주 오겠어요. 그러면 저를 위해 등불을 켜주시겠죠?"

"물론 켜고말고. 오기만 한다면....."

그 이후, 테레사는 자주 그 노인의 집에 가 봉사활동을 했다.

자신이 가지 못할 때는 동료 수녀를 대신 보냈다.

이제 노인의 방엔 매일 등불이 켜져 있었고 노인은 더 이상 쓸쓸하지 않았다.

늘 찾아와 집안일도 해주고, 이야기도 해주는 테레사와 수녀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로부터 2년 후 노인은 편안히 숨을 거두며, 곁에 있던 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테레사수녀에게 전해주구려. 테레사수녀는 내 인생에 등불을 켜준 사람이라고....."

누군가의 등불이 되어 준다는 건 참으로 의미있는 일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인생이지만, 보다 더 값지고, 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길에 설수 있다면.

나로 하여금 작은 초처럼 주위가 환해질 수 있다면.

하나님 때문에 우리네 인생길은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곳, 어떤 자리에서든지 등불과 같은 인생길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자 할 때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무엇보다도 최고의 사랑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습니다.

본문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기사는 4장의 사마리아 여인, 6장의 오병이어의 표적기사와는 그 성격을 다릅니다.

갈릴리와 사마리아에서 예수님은 대중들로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셨지만,

반면에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표적을 통해서는 배척을 받게 됩니다.

왜 4장,6장과 5장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는 걸까요?

열렬한 환영 대신 병자고침 사건을 통해서 유대인들과의 갈등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갈등은 계속해서 고조되어 결국은 예수님은 죽음을 당하시게 됩니다.

배척하는 유대인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몰랐기에 이 표적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가장 성공한 표적입니다.

 본문의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이 계기가 되어 안식일의 문제로 심화됨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병 고침은 분명히 주님이 의도하신 핍박을 받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그것은 십자가 지심을 통한 죽음입니다.

 요12;32에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라고 말씀하신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는 성공한 표적입니다.

주님은 율법에 얽매여 있는 안식을 거부하셨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안식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그 분 안에는 참된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대가는 자신의 죽음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심장부입니다.

죄로 죽은 우리들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죽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고,

그 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참된 소망과 참된 안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율법의 완성자이십니다.

38년 된 병자의 고침은 많은 병자들과 유대인과 지금의 우리들을 위한 표적입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해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신경 쓰셨던 것은 여론이나 사람들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분의 삶은 온통 하나님께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17절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아버지와 일치되는 삶, 순종의 삶을 말씀합니다.

아버지의 걸음이 멈추면 아들의 걸음도 멈추고 아버지의 손이 가는 곳에 예수의 치유의 손도 내밀어지고, 아버지의 말씀이 예수의 말씀이 됩니다.

아버지와 온전히 일치되는 순종의 삶,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요15:19-20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오늘 우리가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해 오해와 핍박을 받으면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핍박을 받았으니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가진 문제보다 더 큰 은혜의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아버지와 철저히 일치하는 삶,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삽시다.

핍박을 당할지라도 순종의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생명의 주님, 치유의 주님,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전이 아니라 베데스다를 찾으신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길 바랍니다.

제사장이 아니라 38년 동안 소외된 병자를 찾으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온 세상 사람들이 보고 깨닫도록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죽기까지 순종하며, 기쁨과 평화 가득한 삶을 사시길 소원합니다.

 

기도

오늘 예배드리는 날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가시는 주님, 가장 약한 곳을 찾아가시는 주님,돌아보며, 용서하며, 치료하시는 예수님 감사드립니다.

자신까지도 아끼지 않고 버리시면 우리들에게 순종을 가르쳐주신 주님

이 주님의 온전히 본받아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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